지난 여름 영등포역에서 만취해 정신을 잃은 노숙인들을 보았다. 한여름 땡볕 아래 누워 꼼짝도 안 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파리떼가 얼굴로 날아드는 것도 알지 못했다. 보다 못한 행인 몇이 달려들었다. 팔다리를 잡아끌어 간신히 그늘로 옮기는 걸 보다 자리를 떴다. 노숙인들 대다수가 이렇듯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다. 역사(驛舍)가 노숙인들의 생활 터전이 된 지도 오래이다. 대부분의 역사들이 곧장 대형 백화점으로 연결된다.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역사 밖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럴 때의 서울은 여러 소재의 종이 조각에 천과 쇠붙이 들을 마구 붙인 대형 콜라주 같다. 말 안 되는 일들이 없다. 신길 지하차도를 빠져나와 친정으로 우회전하는 모퉁이에서 가끔 여자 노숙인 하나를 만난다. 엇비슷한 복장의 노숙인들 가운데 그녀가 눈에 띈 것은 그녀의 뛰어난 패션 감각 때문이었다.
전 재산을 비닐 봉지 두어 개에 담은 것도 겹겹이 옷을 꿰어입은 것도 비슷하지만 뭐랄까 그녀에게서는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 사이 그녀의 옷도 가벼워졌다. 상하의의 대범한 배색과 발목 드러난 운동화까지 봄 기운이 물씬하다. 조깅을 하다 온 듯한 차림이다.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봄이 깊어진다. 한겨울 추위가 지나가니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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