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66년 런던에서 열린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남한은 그 1년 전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북한을 이길 가망이 희박하자 대한축구협회가 정부당국과 협의해 아예 불참해버린 것이다. 북한에 지면 큰일나는 것으로 여겼던 시절 한국 축구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다. 1956년과 196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1,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축구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한국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선수들의 자만과 부패 등으로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고 국제대회 참패를 거듭했다.
▦ 북한이 1963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가 경기)대회 축구경기에서 아랍공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남한은 북한을 얕봤다. 그러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이 아랍공에 10대 1로 대패하면서 북한과의 실력차는 명백해졌다. 잉글랜드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 불참 결정도 그 후의 일이다. 그때부터 남한은 북한이 나오는 대회는 아예 회피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과의 대진을 피하려고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진 일도 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축구 남북대결이 없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 최초의 남북 공식 A매치는 1978년 태국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이뤄졌다. 남북은 결승전에서 만나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0대 0 무승부로 공동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13번의 대결에서 남한이 5승7무1패로 단연 우세를 보여왔다. 남한의 1패는 1990년 10월 11일 평양서 열린 1차 남북통일축구대회 때의 1대 2 패배. 12일 후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2차 통일축구대회에서는 남한이 1대 0의 승리를 거뒀다. 오늘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대결은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B조 1, 2위가 걸린 중요한 1전이다.
▦ 남한은 7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가는 길목이지만 북한에는 잉글랜드 월드컵 8강신화 이후 44년 만의 본선 진출이 걸려 있다. 북한은 엊그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B조 5차전 승리로 조 1위에 올라서면서 본선 진출의 꿈을 한껏 부풀렸다. 경기가 끝난 뒤 평양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오늘 남북축구 대결은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상태로 빠져든 가운데 열려 또 다른 관심을 모은다. 최선을 다하는 페어플레이와 남북동반 본선 진출의 구도를 연출해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는 계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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