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젊은이들에게는 추억을 만드는 장소로, 또 나이 든 이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장소로 사랑 받고 있는'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 해에 무려 15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러면 이 섬이 도대체 언제부터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인가?
1965년 어느 날 내가 한국일보 자매지인 '주간한국'의 기자로 있을 때이다. 편집 책임자인 김성우 부장을 장기영 창간사주가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장 사주 방을 다녀온 김 선배는, "재미있는 사업을 한번 해 보자"고 했다. 재미있는 사업이라니? 청평 댐 서북쪽에 섬이 하나 있는데 이 섬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의아했다. 그 일을 왜 우리가 해야 하는 걸까? 사연은 이랬다.
장기영 사주의 한국은행 근무 시절에 동료였고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으며 장 사주하고 동갑(1916년생)인 민병도씨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섬 하나를 샀는데 그 섬에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아이디어도 없으니 도와 달라고 장 사주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최고의 부수를 자랑하며 영향력이 막강했던 '주간한국'이 이 섬을 세상에 알리는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여럿이 모여서 행사를 벌인다든지, 사업을 하는 일을 좋아하는 김성우 선배는 이 날부터 신이 났다. 그 다음 날 당장 현장을 확인하러 가야만 했다. 아직 포장이 아직 되지 않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선착장에 가 보니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한 척 있었다. 그 배를 타고 도착한 남이섬은 그야말로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황량 했다.
왼쪽에는 소를 기르는 우사가 있고 그 앞에는 직원들 사무실이 있을 뿐이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김 부장은 대뜸 '밤 줍기 대회'를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 계절은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고 또 섬 안에 밤나무가 많이 있어서 제격이었던 것이다.
■ '가을이라네 밤 주우러 가세'
그 주의 주간한국에는 '가을이라네 밤 주우러 가세'라는 제목의 기사성 공고가 실렸다. 물론 김 부장이 만든 제목이고 가족 단위, 또는 연인 커플의 신청을 우선하기로 했다. 처음이고 해서 우선 버스 3대분 정도로 약 100명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200명 이상이 신청을 했다.
주간한국 기자들이 전원 동원되었고 김 선배가 총 지휘를, 그리고 내가 진행 책임을 맡았다. 밤만 주우면 약간 싱거울 것 같아서 라디오 공개 방송 팀을 초청하여 가수들 노래를 즐겼고, 참석자들의 노래자랑이나 장기자랑 등으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상품이 푸짐했다. 밤을 많이 주운 이에게 주는 상, 제일 큰 밤을 주운 이에게 주는 상, 밤을 잘 까는 이에게 주는 상 등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상을 타기 위해 서울에서 아예 밤을 사 가지고 오기도 했다. 물론 이 사람은 실격이 되었다.
첫 번째 행사인데도 대성공이었다. 심지어 이 행사 기간에 장기영 사주는 한국일보 취재 비행기(아즈텍)를 보내 남이섬 하늘 위에서 축하비행을 해 주기도 했다. 이 밤 줍기 대회는 그 후로도 매년 개최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 신청자가 늘어나서 한번에 2,000명 이상이 오기도 했다. 많이 오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버스를 빌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한 대에 40명이 탄다고 할 때 30대 정도가 필요한데 60년대 중반에 서울 시내에 그럴 만큼 버스가 많지 않았다.
인근 경기도까지 수소문해서 그럭저럭 행사를 마쳤다. 재미있는 것은 밤 줍기 대회에서 만나 사귀다가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몇몇 있다는 사실이다. 이 행사가 크게 성공을 거두자, 좀처럼 가만히 못 있는 김 부장이 또 나를 불렀다. "이번엔 뭘 하시게요?"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그는 "맥주 마시기 대회를 합시다"라고 했다.
■ '문화인 맥주 마시기 대회'
그냥 대회가 아니고 '문화인 맥주 마시기 대회'였다. 장소는 역시 남이섬이다. 그 당시 맥주는 일반 사람들이 많이 마시기에 부담이 가는 술이었다. 그래서 행사의 취지는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을 초청해서 하루쯤 위로를 하자는 것이었다.
돈 주고 살 예산이 없으니 맥주는 두 군데의 맥주회사로부터 찬조를 받기로 했다. OB와 Crown 맥주회사에서 흔쾌히 많은 양의 맥주를 보내왔다. 우리는 하루 전날 맥주를 트럭에 실어 남이섬으로 보냈다.
하필이면 대회는 무척 더운 날 열렸다.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문화인들은 거의 다 참석을 했다. 시인, 소설가, 클래식 가수 작곡가, 대중 가수 작곡가, 작사가, 아나운서, 성우, 화가, 문학평론가, 영화감독, 배우, 연극인 등등 300여 명이 대회에 참가했다.
경쟁종목으로는 맥주 많이 마시기, 한 병 빨리 마시기, 우아하게 마시기 등이 있었다. 여류시인 김남조씨는 우아하게 마시기에 도전했고, 한 병 빨리 마시기 남자부에서는 아나운서 임택근씨가 우승을 했다.
누가 우승을 하고 준우승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대회의 근본 목적은 문화 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선ㆍ후배들, 스승ㆍ제자들이 스킨십을 갖는 것이었다. 그만큼 대회에 뜻이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일까. 사고가 생겼다. 행사를 무사히 끝내고 소를 기르던 우사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는데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정달영 기자가 우사 입구에서 발을 헛디뎌 홈통에 빠지면서 눈 위에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나는 급한 대로 손수건으로 지혈을 시키고 가평읍내로 가기 위해 배를 불렀지만 워낙 안개가 자욱해서 배가 뜰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배의 선장은 매우 조심스럽게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건너게 해주었다. 지금도 그 선장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는 그 후로도 남이섬에서 이 두 가지 이외에 여러 가지 행사를 많이 벌였다. 때문에 이 섬은 주간한국으로 인해 일반에 알려지고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제는 국내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고 시설도 좋아 졌다. 잘 가꾸고 더욱더 아름답게 지키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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