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바마 정부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경제학)다. 부시의 저격수를 자처했던, 뼛속까지 진보주의자인 그는 최근 오바마 정부의 은행 부실자산 처리계획에 대해 "쓰레기에 돈을 쏟아 붓는 격"이라는 등 쓴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제프리 삭스 등 진보 석학들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바마 정부가 유독 크루그먼에 신경쓰는 이유는 뉴욕타임스 칼럼 등을 통해 그가 끼치는 대중적 영향력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인터넷에서는 크루그먼을 각료로 임명하라는 의견이 거세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자신은 "뒷방(backroom)에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미 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4월6일자)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는 크루그먼을 달래려 분투 중이다. 재무부 관료들은 그의 실명을 거론하며 칭찬했고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크루그먼에 백악관 초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대통령이) 내 이름을 잘못(크루'구'먼) 발음한데다 내키지 않는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부자에 대한 과세, 의료보험 개혁 등 오바마 경제정책을 지지해 왔던 크루그먼이 갑자기 돌아선 계기가 물론 개인적 서운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민간 투자 전문가들에게 돈을 빌려줘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현 방식을 따르면 "부시가 져야 할 위기의 책임을 오바마가 같이 지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게 크루그먼의 논리다.
그는 정부가 은행의 부채를 보증하고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스웨덴과, 저축대부업체 도산 사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채택한 방식이다.
오바마 정부는 겉으로는 크루그먼의 의견에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한 관료는 뉴스위크에 "그의 주장이 틀렸다 해도 잘못을 이해해 줄 수많은 팬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규모가 작은 스웨덴과 달리 8,000여개의 은행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국유화는 실용적 선택이 아니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현 상황에서 오바마와 크루그먼의 화해를 중재할 인물로는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꼽히고 있다. 서머스와 크루그먼은 지난 주부터 수 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월가의 입장에 사로잡혀 있다"는 크루그먼의 생각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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