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를 기다림 - 김기택
눈을 어둠으로 가득 채우고
해골처럼 어둠이 눈이 되도록 채우고
끝없는 어둠의 크기가 다 보이도록 별 없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하늘나무
구름 속에서 태어난다는
땅과 하늘을 이을 만큼 커다랗다는
하늘에 뿌리박고 땅을 향해 거꾸로 자란다는
어둠을 쪼개서 그 벌어진 틈으로만 자란다는
허공에 뻗어 있는 무수한 핏줄을 찾아 그 속으로만 가지를 뻗는다는
온몸이 희디흰 빛으로만 되어 있다는
제 안에 넘치는 빛을 어쩌지 못해 나무나 사람을 태워 죽이기도 한다는
그러나 눈 깜짝할 새보다 더 짧게 살다 간다는
죽으면 땅에 묻히지만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그 하늘나무
온몸이 어둠이라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암쿠름과 수쿠름은 몸이 달아 자꾸 으르렁거리는데
땅과 어둠은 서로 으스러지도록 꽉 껴안고 들썩거리는데
암우주와 수우주는 서로 꼬리를 물고 돌며 똬리를 틀고 있는데
우주가 건네는 말은 지구에선 기상(氣象)으로 번역된다. 우주의 언어가 번역되는 그 순간은 얼마나 장엄하던가? 가령 그리스인들은 우주가 구름들 사이로 건네는 말, 번쩍이는 나무, 바로 번개를 신의 창끝으로 번역하지 않았던가? 우주에 뿌리를 두고 인간의 대지에 머리를 괴는 이 나무의 탄생은 땅과 어둠이 꽉 끌어안은 뒤에 찾아온다. 뢴트겐 광선 속에서 나무가 흰 뼈다귀를 드러내며 탄생하는 순간, 지구는 이 장엄한 나무 앞에서 공손히 우주의 품에 몸을 맡긴다. 인간들도 그렇게 한다. 한 점 티끌로 우주의 품속에 안겨있는 것이 삶임을 깨닫고, 번개 치는 하늘 아래서 마냥 두려워하며 겸손해진다.
●김기택 1957년 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 구멍 속의 폭풍> <껌> 등. 김수영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4) 등 수상. 껌> 바늘> 태아의>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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