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행복하게 사는 법] <12> 행복은 일과 경험 자체에서 온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12> 행복은 일과 경험 자체에서 온다

입력
2009.03.30 00:02
0 0

미국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유태인 상인이 시내 한 복판에 커다란 양복점을 열었다. 평소 유태인들을 좋아하지 않던 몇 명의 백인 주민들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네 꼬마들을 선동하여 매일 이 가게 앞에 가서 돌을 던지며 "유태인 물러가라!"라고 소리 지르도록 만들었다. 꼬마들의 '테러'에 몇 날을 시달린 유태인 주인은 기발한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유태인 주인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횡포를 부린 꼬마들을 모아 놓고 "수고했다"고 말하며 10센트 씩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신바람이 난 아이들은 다음날 또 난동을 부렸는데, 이번엔 5센트 씩만을 받아가게 되었다.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그 다음날 또 다시 가게에 찾아왔다.

하지만 이날 주인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이 좋지 않아 오늘부터는 1센트 씩밖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 중 가장 똘똘한 녀석이 "우리가 고작 1센트 받기 위해 매일 여기까지 와서 목 아프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아요!"라며 강하게 항의한다. 그 날 이후로 꼬마들은 유태인 상점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이 유태인 양복점 주인은 심리학 명예박사학위 하나 정도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꼬마들은 유태인 아저씨를 놀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장난이었는데, 주인은 꼬마들의 이 '재미'를 돈으로 보상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가 금전적 보상으로 바뀌자 꼬마들은 서서히 아저씨를 놀리는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기게 됐다.

이처럼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했던 일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면, 그 경험이 주던 원래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노련한 유태인 주인은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간파해 지혜로운 해법을 찾았던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단지 외적인 보상(돈, 칭찬 등)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하게 되면 즐거움은 메말라 버린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공을 차는 것이 아니다.

공을 차며 뛰어 노는 것 자체가 그냥 즐겁기 때문이다. 유태인 주인과 같이 만약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매번 돈으로 보상해주면 처음엔 영문도 모르고 좋아하겠지만, 축구를 하며 느꼈던 순수한 재미는 급격한 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빌 러셀은 농구를 할 때마다 항상 자기는 그 속에서 '매직(magicㆍ마력)'과 같은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최고 선수로 각광 받기 시작한 대학 4학년 때부터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구단 관계자들이 그의 경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농구가 '일'로 생각되기 시작한 그 순간 이후로 예전에 그가 느꼈던 농구의 매직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혹시 우리도 일상의 많은 일들을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며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사람을 만나며, 오직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고 있다면 그 속에서는 '매직'이나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의 일을 단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스트레스의 원천이 될 뿐이다. 일요일 늦은 밤 귀신이 TV에서 기어 나와 졸고 있는 회사원을 놀라게 하려는 광고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월요일이라고 오히려 회사원이 귀신에게 고함을 지른다.

실제로 일요일 저녁만 되면 월요병 스트레스로 화장실을 계속 찾게 된다는 어떤 회사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남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든 내가 하는 일에서 개인적인 의미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고 음미하는 것이 행복의 첫 걸음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한 분은 보통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항상 주말마다 월요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아주 특이한 '월요병'을 갖고 계셨다. 월요일 아침이 돼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구와 강의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새로운 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분은 바로 나의 지도교수였던 에드 디너 교수이다. 나는 이 분이 어떤 거창한 이유를 위해 연구와 강의를 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없다.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 그 분에겐 충분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이러한 즐거운 몰입은 행복뿐 아니라 놀라운 성취를 가능케 한다. 아직 한참 활동 중이지만 이미 백과사전에는 행복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소개되고 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하게 되는 순간부터 즐거움은 증발하기 시작한? 직장 일, 대인관계, 학업 등 일상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강력한 마음의 원리이다. 'ㅇㅇ을 위해' 한다는 생각을 줄이고, 그 경험 자체가 주는 보상에 더 많은 초점을 두는 것.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마음의 습성이다.

■ 과학성적 최고 한국, 과학 흥미는 꼴찌… 멀고 먼 노벨상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회나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한국의 선전을 기원한다. 한국팀이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소식이다. 하지만 나는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과학자 중 누군가 노벨상을 한 번 수상하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노벨상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노벨상 수상은 그 나라의 학문적 수준을 반영하는 상징적 지표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한국인들 중에 왜 아직까지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없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것을 뒤엎을 만큼의 획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창조력을 충분히 양성시키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노벨상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계에 큰 영향을 준 이론의 최초 창시자를 추적하여 판별하는 일이다. 이론을 확장시키고 응용하는데 크게 공헌한 학자는 다른 사람일지라도, 노벨상은 그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다시 말하면 응용력이 아닌 독창성과 창의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 학생들은 부족함을 보인다. 심리학자 아마바일(Amabile)의 연구를 보면 창의력은 사고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 자체에 몰입했을 때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반대로 생각이나 공부를 다른 외적인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경우에는 창의력을 떨어뜨린다. 아마바일이 실행한 여러 실험들은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남의 칭찬과 같은 외적인 보상을 기대하고 쓴 글이나 시는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서 쓴 작품보다 덜 창조적이었다. 다른 부수적인 목적을 얻기 위해 하는 사고에서는 창조적인 생각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 학생들은 사고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나 호기심이 충족될 때 얻는 만족감을 경험해 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늘 부모의 칭찬, 대학입학, 혹은 출세와 같은 외적인 보상을 목표로 삼고 책상 앞에 앉는다.

작년 연말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한국 중학생들의 과학 성적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학생들이 그것을 공부하며 느끼는 즐거움은 세계 50 개국 중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공부로 단기적인 성취는 할 수 있지만 획기적이거나 창조적인 결실은 내지 못한다.

1996년 노벨상을 받은 오세로프(Osheroff)는 자신이 물리학자가 된 계기가 어릴 때 '지하실에서 혼자 물건들을 가지고 놀면서 배운 신기한 사실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순수한 호기심과 앎의 기쁨에서 출발하는 연구와 성공의 표적을 맞추기 위해 하는 공부는 당연히 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어떤 일을 외적인 보상 때문에 하게 되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지고, 재미가 없는 일에서는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