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19)는 배경음악으로 <세헤라자데> 를 선택했다. 아라비아 처녀 세헤라자데는 매일 신혼밤을 치른 뒤 신부를 죽이는 야르왕에게 시집을 갔다. 세헤라자데>
매일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세헤라자데는 1,001일 동안 목숨을 연명한 끝에 페르시아 왕비가 됐다. <아라비안 나이트> 주인공 세헤라자데처럼 피겨여왕에 등극한 김연아도 현명한 판단이 돋보였다. 아라비안>
김연아가 29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약점인 트리플 루프(공중 3회전)를 포기하고 더블 악셀(공중 2.5회전)을 선택한 김연아는 자유종목(free skating)에서 131.59점을 얻어 총점 207.71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캐나다의 조아니 로셰트(191.29점)는 은메달. '꿈의 점수'라던 200점을 세계 최초로 돌파한 김연아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가 됐다.
기대가 컸지만 걱정도 많았다. 김연아는 지난달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루프 포기를 선언했다. 루프 대신 더블 악셀을 선택해 실수를 줄이겠다는 계산. 일본의 동갑내기 맞수 아사다 마오는 기본점수 8.20점짜리 트리플 악셀(공중 3.5회전)까지 구사한다.
김연아가 트리플 루프(5.00점) 대신 더블 악셀(3.50점)을 뛰기로 결심하자 주위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총 24명 가운데 19번째 출전한 아사다는 두 번째 과제인 트리플 악셀에서 엉덩방아를 찧어 1.00점을 얻는데 그쳤다. 22번째 출전한 김연아는 두 번째 과제인 더블 악셀을 깨끗이 성공시켜 가산점을 포함해 5.30점을 받았다.
기술 난이도는 아사다(122.03점)가 높았지만 점수는 김연아가 무려 9점 이상 앞섰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려면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 김연아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세헤라자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말했다면 다른 처녀처럼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김연아도 그랑프리 파이널처럼 루프를 고집했다면 금메달을 손에 쥐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루프를 고집하다 아사다에게 우승을 넘겨준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선 더블 악셀을 통해 실수를 줄인 끝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반면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은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김연아는 세계랭킹 3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김연아는 세계 랭킹 점수 4,652점으로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4,635점)를 제쳤다. 그러나 4위에 그친 아사다(188.09점)는 2위에서 3위로 추락했다.
4대륙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에 이어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한 김연아에게 남은 목표는 이제 동계올림픽 금메달 뿐이다. 김연아는 "2010밴쿠버올림픽에서도 꼭 우승하겠다"며 해맑게 웃었다. 김연아는 30일 갈라쇼에 출연한 뒤 31일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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