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25일 금융권 최초로 ‘금융위기극복을 위한 노사공동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은행이 관례적으로 내는 전시성 행사자료려니 하면서 심드렁했다가 자세히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위원회 구성을 이종휘 행장이 아닌 박상권(43ㆍ사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우리은행지부 위원장이 제안한 것이다. 통상 이 같은 위원회 구성은 경영진이 제안해 노조가 받아들이는 것이 관례. 하지만 우리은행 노조가 먼저 경영진에 손을 내 민 것이었다.
진의가 궁금해 27일 우리은행 본점 노조사무실을 찾아 박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현재 우리은행 위기는 경영진만의 생각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며 “현장의 구심점이 절실한 만큼 노조가 자발적으로 위기극복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책위 구성 자체가 구조조정에 사실상 동의를 한 것인 만큼 노조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후 노조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운 5,000여명이 답을 보내왔고, 80% 이상이 회사와 함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면서 “솔직히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고통분담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겠다’는 응답이 84%였고, ‘노조도 위기극복의지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는 동의가 85%에 달했다.
대책위가 단순한 전시성 기구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은 “이슈가 있을 때 마다 실무진들이 실시간으로 만나 문제를 협의하는 실질 기구”라며 “고용안정을 전제로 고통을 감내할 부분을 적극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 구성이 금융노조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위원장은 “금융위기를 맞아 경영진 뿐만 아니라 노조원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금융노조 차원에서 우리은행 사례를 토대로 고통분담을 위한 실질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경영진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위원회가 경영상의 민감한 문제까지 다루고, 때에 따라서는 경영자료를 공유해야 하는 만큼 경영진에게는 부담”이라며 “이종휘 행장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김인식 야구국가대표 감독이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고 했듯, 우리도 ‘은행이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데 공감한다”며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 경영정상화가 되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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