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ㆍ이현정 옮김/아고라 발행ㆍ292쪽ㆍ1만원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 이것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불평이야."(70쪽)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 그는 말년에 어린 소녀들과 편지 주고받기를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소녀들에게 앤젤피시 모양의 핀을 나눠주기도 했고, 그 부모를 초청해서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906년에 뉴욕에서 만난 한 소녀는 그를 짝사랑 상대로 여겨, 말하자면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바람에 곤혹을 치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인 조이스 캐롤 오츠(71ㆍ사진)는 <소녀 수집하는 노인> 에서 대작가와 어린 소녀의 펜팔이라는 소재에 눈을 돌린다. 일흔 줄에 접어든 마크 트웨인은 소녀들을"인생이 완벽한 기쁨이고 인생에서 한 번도 상처 받아본 적 없고 씁쓸함을 느껴본 적도 없는 귀여운 어린 것들"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향한 그들의 애정에 우쭐하고, 소녀들은 편지에서"저의 은밀한 정체성은 이 세상 전체보다 할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작은 소녀"라며 노골적인 애정 공세를 펴기도 한다. 소녀>
이 소설집은 마크 트웨인을 비롯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드거 앨런 포, 헨리 제임스, 에밀리 디킨슨 등 미국문학을 수놓은 문호들의 작품과 그들의 행적을 소재로 한 5편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황량한 밤'이라는 원제처럼 각 단편의 분위기는 대개 음울하다.
창작능력과 성적 능력이 쇠약해지자 소녀들을 '수집'하며 젊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편집광적 집착을 보인 마크 트웨인, 망가진 육신이 역겨워 자살을 열망하지만 매번 그 열망에서 도망쳤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젊은 시절 군복무를 피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자청하고는 그들에게 동성애적 열정을 느끼는 헨리 제임스 등 지은이는 문호들조차도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에 대한 집착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위대한 문호조차 그러할진대 하물며 일개 필부필부들에게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조이스 캐롤 오츠의 생각인 듯하다. 인간의 본성과 씨름하는 주제의식도 묵직하지만, SF나 호러소설의 요소까지 차용하는 등 대가의 반열에 오른 캐롤 오츠의 '젊고 유쾌한 상상력'을 이 소설집에서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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