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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한국인 여성셰프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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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한국인 여성셰프 이현진

입력
2009.03.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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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롯데호텔에 문을 열었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미슐랭 3스타급 프랑스 식당으로 국내 레스토랑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미슐랭 가이드 최고 평점을 받는 세계적인 레스토랑의 서울 안착에는 한국인 여성 셰프 이현진(29)씨의 역할이 컸다.

파리 '르 꼬르동 블루'에서 2년을 유학한 이씨는 미슐랭 3스타급 '조엘 로부숑'에서 4년간 혹독한 실습 과정을 거쳤고,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로부터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함께 준비해 오픈했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수석 셰프로 식재료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그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 물었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 과정에서 한국 음식의 보완점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그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오픈을 앞두고 제일 먼저 걱정되는 건 바로 재료였다"고 했다. 여러 인종이 어우러진 파리에는 웬만한 나라의 레스토랑이나 식료품 가게는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의 이곳 저곳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음식 재료가 모여든다. 일본의 야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행기로 매일같이 공수돼 오고 우리나라 경북에서 재배된 팽이버섯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는 "냉장고, 오븐 등 주방기구는 우리의 기술력으로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가 늘 접하는 식재료에서는 거의 발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꼭 가락시장을 들리지만 야채의 종류가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늘어나지 않았다.

과일 주산지인 동남아와 더 가까우면서도 수입 과일의 종류는 파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는 "레몬과 라임은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맛도 엄연히 차이가 있어 조리법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데, 한국에서 그 라임 하나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요리에서는 기본인 장 맛을 중요시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된장국을 끓여도 된장 맛이 별로라면 좋은 맛을 내기 힘들다. 프랑스 요리도 마찬가지다. 기본이 되는 버터, 크림의 맛이 좋아야 하고 소금과 후추의 질도 중요하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 지역에서 나는 사라왁 후추는 향기가 좋고 많은 양을 써도 버터에 살짝 익혀 주면 독한 맛이 없어 맛이 훌륭하다.

그는 "이 후추를 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걸 수입해서 포장용기에 담은 프랑스 회사에 비싼 돈을 지급하고 수입해야만 한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노릇"이라고 했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더 들 수 있다.

맛집을 찾아 몇 시간을 달려가는 등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애정은 무척이나 각별하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문화 역시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 세계화하고 다양해지며 조금은 캐주얼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레스토랑 오픈 후 피에르 가니에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프랑스 레스토랑인데 음식에 사용된 식재료는 동양적인 것이 많아 한국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가니에르에게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식문화에서 국경을 나누듯 선을 긋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메뉴를 개발할 때는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선택과 상상력만이 새로운 걸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달 바뀌는 점심 메뉴, 두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세트 메뉴와 계절마다 바뀌는 단품까지 그는 메뉴가 바뀔 때마다 매번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고기 메인 요리만 따져봐도 일년에 서른 종류의 다른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선 쇠고기 스테이크나 양고기만을 선택한다.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닭고기는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생각과 쇠고기도 꼭 안심과 등심이어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돼지고기든 쇠고기든 모든 부위별로 거기에 맞는 조리법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마블링이 좋은 부드러운 쇠고기에만 익숙한 탓에 씹는 맛이 좋은 다른 부위들을 놓치고 마는 아쉬움도 있다.

그는 "익숙한 재료, 맛, 모양의 틀에서 벗어나 호기심과 관용의 눈으로 식재료를 보게 되면 한국의 음식 문화도 더욱 성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프랑스 요리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라며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소개했다. 먼저 30분이면 뚝딱 해낼 수 있는 것으로 '자스민향 오렌지 소스의 야채 닭가슴살' 요리를 추천했다.

오렌지 주스에 자스민 차를 넣어 농도가 짙어질 때까지 졸여 소스를 만든다. 닭가슴살 부위에 색색깔 파프리카와 호박을 젓가락을 이용하여 쿡쿡 눌러 박고 소금, 후추 간을 한 후 랩에 싸서 찜기에 12분간 익힌다.

익혀서 나온 야채 닭가슴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자스민향 오렌지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닭고기나 야채를 싫어하는 어린이도 소스의 달콤새콤함 때문에 즐겨 먹을 수 있다. 갑작스레 집에 손님들이 왔을 때 입맛을 돋우는 요리로도 딱이다.

우리 식재료인 배추를 응용한 프랑스 요리 '푸아그라 김치 토스트'도 소개했다. 빵을 얇게 저며 깔고, 레몬, 파프리카 가루, 화이트 발사믹 비네거에 절인 배추를 얹은 후, 푸아그라를 얇게 저며 얹는다.

청포도, 건청포도, 아몬드 등을 이용해 모양을 내고 빨간색 파프리카 가루를 뿌려 줌으로써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동시에 맛도 더한다.

레몬 오렌지 칩 등을 이용하면 장식 효과와 함께 입맛도 달콤하게 돕는다. 이 요리의 포인트는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프렌치식 김치로 살짝 보완했다는 것이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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