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ㆍ합병(M&A)으로 급성장한 STX그룹이 이번엔 M&A로 인해 구설수에 휩싸였다. STX가 채권단에 회생을 약속하며 인수한 중소 건설사를 1년여 만에 별다른 노력 없이 정리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24일 업계에 따르면 STX는 2007년 4월 인수한 STX건설산업(구 새롬성원)의 사명을 최근 인수 전 사명으로 되돌리면서 대표이사를 STX 인사에서 옛 새롬성원 관계자로 바꿨다. 기업 회생과 관련된 지원도 전면 중단했다. 이에 대해 새롬성원 채권단은 "STX가 채권단과의 회생 약속을 저버리고 사실상 정리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상도의를 저버린 처사로, 채권단과 해당 중소기업은 죽든 말든 혼자만 살겠다는 의도"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STX그룹은 2007년 당시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던 중소 건설사 새롬성원을 인수한 뒤 사명을 'STX건설산업'으로 바꿨다. STX에는 이미 'STX건설'이라는 계열사가 있었지만, 그룹 내부 공사만 맡을 정도로 영세했다. 이에 따라 국내ㆍ외 주택건설 영업망을 갖춘 새롬성원을 인수해 건설사업 부문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STX는 이후 STX건설과 STX건설산업에 공동 대표이사를 앉혔고, 2007년 9월에는 두 회사 간 합병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새롬성원의 채권 금융기관들은 새롬성원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STX의 약속을 믿고 법정관리 조기 종결에 동의했다. 채권단은 법정관리 체제에서만 가질 수 있는 채권 우선변제권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STX건설산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는 무조건 지급보증을 해줬다.
또 만기연장, 연체이자 감면 등 정상화 지원조치도 취했다. 채권단이 이런 식으로 STX건설산업에 지원해준 금액은 대출과 지급보증을 포함해 800억원이 넘는다. STX그룹도 STX건설산업의 연체이자 일부를 대납해주는 등 약속이행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말부터 건설경기가 급락하자 STX 측의 자세가 돌변했다. STX는 2007년 10월 채권단에 통보도 하지 않고 주주총회를 열어 STX건설과 STX건설산업의 합병안을 부결시켰다. 1년 뒤인 작년 12월에는 STX건설산업의 사명을 새롬성원으로 환원시키고 대표이사도 옛 새롬성원 사람으로 교체했다. 연체이자 대납 등 그룹 차원의 지원도 더 이상 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이 계열분리 의혹을 제기하자, STX는 공문을 통해 "새롬성원을 그룹에서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회사의 강점을 살려 독립경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전략"이라며 "경제사정 악화로 PF이자에 대한 대납조차 어려운 만큼, 이제는 기업 생존을 위해 최선의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 시장이 어려워 당장 매각하기는 힘들겠지만, 계열분리를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은 확실하다"며 "이 과정에서 채권단과 새롬성원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TX 측은 "해외공사 입찰 제안서에 함께 들어가는 STX건설과 STX건설산업의 이름이 비슷해 작년 해외건설 수주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해외사업 확대를 위해 편의상 이름을 바꿨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STX건설과 STX건설산업이 그룹 내부 공사를 제외하고 실제 해외입찰에 함께 지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 세계적으로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데, 회사 이름을 바꿔서 해외수주를 늘린다는 명분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STX의 이런 태도는 그룹이 견지해온 '상생경영' 철학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STX는 작년 말 중소기업 지원 명목으로 우리은행과 함께 총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키로 하는 등 대외적으로 상생경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혼자만 살겠다고 인수한 계열사를 다시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채권단에 심각한 피해를 안기는 대기업이 어떻게 상생경영을 말할 수 있느냐"면서 "향후 M&A시장에서도 신뢰를 잃어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TX 관계자는 "이는 국내 건설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새롬성원 및 채권단과 협의 중에 있다"면서 "상생경영을 지향하는 회사철학과 방침에는 아무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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