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물을 들이는 풍속까지 있으니 봉숭아꽃을 토종식물이라 여기겠지만 중국 남부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다. 씨앗을 빻아 분가루로 썼다는 분꽃도 외래종이다.
이들은 토종식물로 여겨질만큼 한국인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봉숭아꽃은 고려말 문신이규보가 편한 <동국이상국집> 에 처음 등장한다. 이규보보다 후대 사람인 충선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있던 시절, 봉숭아물을 들인 궁녀를 보고 고려 사람임을 알아보고 아낀다는 옛이야기도 전한다. 동국이상국집>
충선왕에게는 미안하게도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한국만의 풍속은 아니다. 터키에도 있다. 2000년에 이스탄불을 갔을 때 그란바자르에서 봉숭아물을 들인 차도르 차림의 여성도 만났다. 이스탄불 곳곳에 봉숭아꽃과 분꽃은 흔했다. 터키 역시 한때 몽골대제국의 속국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봉숭아물 들이기는 이국 풍속으로 몽골대제국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로 퍼져간 것이 아닌가 싶다. 전 지구가 하나의 생태권이니 토종이니 외래종이니 하는 구분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장영실 박제가는 혼혈일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의 과학자 장영실이 혼혈인이라고 나온다. 아버지가 원나라의 소주 항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생이라고 세종 15년조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장영실의 혼혈인 여부를 자세히 알아보려고 전기를 쓴 교수와 통화를 했는데, 그 분은 펄쩍 뛰면서 장영실은 선조가 중국인이지 절대로 당대의 혼혈인이 아니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자체를 부인하느냐고 물었더니 장영실이 혼혈인이라고 주장하려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박제가가 스스로를 '푸른 눈'(綠瞳)이라고 한 것을 들어 작가인 안소영씨는 조금 과감하게 그의 어머니도 푸른 눈이라고 책에 쓴 적이 있다. 서얼 출신인 박제가에게 모계로 외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조심스런 주장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신기하게도 정조 때 궁정에서 회의를 열면 엉뚱하고 삐딱한 박제가는 집안에서 내려오는 호상(胡床)을 들고와 그 위에 앉아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을 미뤄 그가 푸른 눈을 가진 페르시아계가 아닐까 상정하고 국문학자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니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호상이란 꼭 호(胡 – 페르시아)계통이 아니라 중국 의자를 통칭하는 말이고, '녹동'이란 신선의 눈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란다.
신선이라면 매우 좋은 것인데, 스스로를 신선으로 일컬었다는 말은 아무래도 미심쩍기도 해서 가정을 두고 한번 연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모두 회의적이었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 무엇이 사실이냐를 파보기보다는 역사 속의 위인들을 혼혈인으로 규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듯했다.
결혼이민자 가족이민도 검토할 때
과거의 인물에게도 이러니 현재의 혼혈인이 겪는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 신부들이 겪는 어려움 역시 마찬가지이다. 낯설고 물선 곳에 홀몸으로 온 외국인 신부도 딱하지만 큰 돈을 들여 신부를 맞이한 신랑들의 불안감도 이해가 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외국인 신부들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 신랑을 위한 외국어 강좌는 없다는 데 있다.
외국인 신부가 구사하는 언어는 그 흔한 영어가 아니라서 배우자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한국인 신랑에게 이 특수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좌를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신부가 일단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그들의 부모나 형제 자매를 한국에 초청할 수 있게도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혼인건수조차 5년래 최저로 하락했다는데, 다문화가정을 안착시키는 일은 결혼이민여성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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