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부산 출장을 위해 자가용으로 집을 나선 직장인 김모(43ㆍ서울 강남구 서초동)씨. 그는 하이패스(고속도로 무정차 시스템) 단말기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를 논스톱으로 빠져 나왔다.
몇 년 전만 해도 하이패스 장착 차량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보급률이 90%를 넘을 정도로 필수품이 된 상태. 통행권을 뽑으려는 운전자로 북적이던 궁내동 톨게이트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경기 기흥을 지날 무렵, 하이패스 단말기에서 '전방 1㎞ 앞에서 차량 추돌사고가 났다'는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김씨는 곧장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탔다.
그와 동시에 단말기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 용인 지역은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안전 운전하라'는 정보가 전달된다. 고속도로 곳곳에 촘촘히 깔려있는 센서를 통해 실시간 도로정보가 하이패스에 속속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던 김씨는 최근 일부 구간(30㎞)이 개통된 제2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든다. 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sㆍ지능형 교통시스템)의 모든 노하우가 집약된 이 도로는 '스마트하이웨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야말로 꿈의 고속도로이다.
제한속도는 160㎞.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달릴 수 없는 속도이지만, 초보운전자도 가능하다는 것이 도로공사 측의 설명이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면서 계기판이 160㎞에 육박했지만, 체감속도는 경부고속도로를 100㎞로 달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최첨단 방식의 도로포장 기술로 속도감을 최대한 줄였고, 곡선구간도 거의 없는 덕분이다.
주위에 짙은 안개가 자욱했으나 고속도로만큼은 화창하다. 고속도로 분리대에 안개 제거기가 설치돼 있어 수시로 안개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일정농도 이상으로 안개가 끼면 자동으로 감지, 안개 제거에 나선다.
어제 야근을 한 탓일까. 김씨가 깜빡 조는 사이, 차량이 차선을 벗어났다. 순간 차량에서 '삐삐삐삐' 하는 경보음이 울렸고, 김씨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도로에 내장된 센서가 차선 이탈 사실을 차량에 전달해준 것이다.
최근 자동차업계가 스마트하이웨이 개통에 맞춰 새롭게 선보인 자동 주행 기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스마트하이웨이와 스마트 자동차의 완벽한 공조 플레이 덕분에 김씨는 무사히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내용이지만, 현실화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이 같은 꿈의 운전이 가능한 것은 한국도로공사가 도입을 추진 중인 ITS 때문이다.
ITS는 정보, 통신, 컴퓨터, 제어기술 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수집ㆍ관리ㆍ제공하는 최첨단 교통관리 시스템. 국가의 기간 도로인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로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정보를 운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 통행시간 절감은 물론 안전 운행을 보장해준다.
정부가 이 사업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ITS 개발과정에서 다양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파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형 선진화 국토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주력 산업인 IT, 자동차 등과 연계, 경제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녹색 뉴딜산업으로 주목된다.
이 같은 첨단 시스템의 도입은 우리나라에 선진 IT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속도로의 성능 개선은 자동차 산업에도 적지 않은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똑똑한 도로에 똑똑한 자동차는 필수조건인 만큼, 자동차업계에선 지능과 친환경이 가미된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이 세계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속도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스마트하이웨이 건설을 계기로 아직은 후진적인 도로포장기술도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로공사 최고일 스마트하이웨이 사업단장은 "레이더를 이용한 전천후 도로관리시스템 구축 등 ITS가 우리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는 무한대에 가깝다"며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사업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태연 사업부장 "ITS는 미래형 먹거리사업"
"스마트하이웨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인 관심거리입니다. 미래형 먹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도로공사 김태연(48) ITS사업부장은 "선진국들이 이미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스마트하이웨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며 결코 우리가 선두주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김 부장은 "미국은 2002년부터 향후 50년간 150조원이 투자되는 장기 대형사업으로 추진 중"이라며 "고속주행 및 수송수단별 전용도로를 별개 사업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하이웨이는 텍사스주를 관통하는 트랜스텍사스코리도 프로젝트. 여기에는 승용차 전용 3개 차로, 트럭 전용 2개차로 및 6개의 철도노선이 집약된다. 지난해 사업 구상을 마무리 지었고, 올해부터 본격 추진에 나선다.
김 부장은 "일본도 도쿄에서 나고야를 거쳐 고베를 연결하는 왕복 6차로의 제2토메이~메이신 고속도로 구간에 스마트하이웨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총 460㎞ 구간 중 지난해 쿄가~오츄분기점 등 66.5㎞ 구간이 개통됐으며, 2021년 전 구간이 완공되면 시속 140㎞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한 러시아도 스마트하이웨이에 대한 관심이 크다. 김 부장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650㎞ 구간에 향후 5년 동안 65억달러(9,000억원)를 들여 시속 150㎞ 주행이 가능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34개의 논스톱 교통제어시스템, 교통흐름 최적화를 위한 IT기술 등을 집약해 세계 최고의 도로를 탄생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도로관련 산업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 유망산업"이라며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인 만큼 산업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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