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구속기소)씨가 참여정부 시절 자신의 '텃밭'인 경남 지역의 각종 선거에 적극 개입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특수한 지위와 절친한 사이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막대한 자금력이 주변 인사들에게 한껏 위세를 부릴 수 있는 자산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노씨는 2004년 6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던 장인태(58) 전 행정자치부 차관으로부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 전 차관과는 경남도 부지사로 재직할 때부터 친분을 맺은 사이로, 노씨는 곧바로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 크게 먹고 도와주라"며 선거자금 제공을 요청했다. 박 회장은 경남 창원시의 K호텔 지하 주차장에 사람을 보내 당시 장 전 차관의 선거본부장이었던 김태웅 전 김해시장에게 현금 5억원을 전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박 회장과 장 전 차관은 당시 서로 알고 지내긴 했지만, 거액을 성큼 건넬 정도로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노씨의 '전화 한 통, 말 한마디'의 위력이 발휘된 것이다.
노씨의 선거개입은 이뿐이 아니었다. 2005년 4월 재보선 때에는 김해갑 선거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정욱(구속) 전 해양수산개발원장에게 도움을 줬다. 이번에도 박 회장의 자금이 동원됐다. 박 회장은 노씨의 '지시'를 받고 이 후보에게 5억원을 제공했다. 박 회장의 돈이 마치 노씨의 '사금고'처럼 사용된 셈이다. 노씨의 행태는 정ㆍ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통 큰 로비'를 벌인 박 회장의 스타일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2005년 김해갑 재선거 당시 노씨가 박 회장 큰딸의 공천을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의혹이 사실일 경우 노씨는 박 회장의 재산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지역 유력인사로 활동하는 대신, 자신은 박 회장에게 '권력'을 선물하고자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검찰 관계자는 "노씨는 경남 지역의 '큰 어른' 역할을 하면서, 열린우리당을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한 것 같다"며 "선거에서 당선되면 대개 노씨에게 인사를 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씨가 지역에서 노 대통령의 권력을 배경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노씨와 박 회장의 '17대 총선 역할론'을 제기해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은 이날 "17대 총선을 앞두고 박 회장과 노씨로부터 열린우리당 입당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며 "당시 이들은 나와 함께 공민배 전 창원시장, 정영두 전 청와대 경제정책국장 등 3명의 영입을 공언했다는데, 우연인지 다른 두 사람은 모두 우리당행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친노 인사는 "노씨와 박 회장의 과욕이었을 뿐 여권 핵심부가 기획했다고 보기엔 너무 어설퍼 보인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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