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바로 동성애자들의 행진이다. 반 시간 남짓 걸리는 이 행진은 샌프란시스코의 심장부인 Market street의 교통을 거의 차단시킬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 화려한 무대장치를 한 오픈카에 탄 채 음악에 맞춰 요사스럽게 춤을 추는 아름다운 미녀들이 전부 남자라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놀랐다. 내가 연방 하원의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내 앞에서 잠깐 멈추고 키스하는 흉내를 내면서 유난히 엉덩이를 흔드는 이들은 너무나 섹시하고 아름다워서 도저히 남자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Market street를 한참 따라가면 시청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다섯 블록 정도 더 가면 소위 카스트로란 지역이 나오는데, 이 지역이 바로 동성애자들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행진이 끝난 뒤 그 곳에 가보니 서로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장 남자들로 꽉 차 있다. 중간에 서로 부둥켜 안고 진한 키스를 하는 모습은 보기에 무척 불편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제껏 숨어살던 동성애자들이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이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옹호그룹도 탄생했다. 이들은 조그만 귀고리를 자기들만의 ID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미국 주류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숨을 죽이며 살아온 저명 인사들이 자기들도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나섰다.
애리조나 주 출신 전직 공화당 하원의원이 그 중 한 명이었고,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바니 프랭크도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 군대에서도 여기 저기서 병사들이 자기들도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나서는 바람에 부대 내에서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특히 몇 개월씩 바다에 나가 있으면서 좁은 방에서 침식을 같이 하는 해군 병사들의 경우 몇 달씩 여자 구경을 못한 혈기왕성한 이들이, 가까이 있는 자기 동료가 동성애자란 사실을 알면 그들의 사기는 물론 어떻게 행동할 지가 큰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국방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게 저 유명한 소위 "Don't ask, Don't tell."이란 정책이다. 동성애자들에게 제발 동성애자라고 말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이고, 또한 동성애자냐고 결코 묻지도 말라는 뜻이다. 개인의 비밀로 묻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것을 더 이상 비겁하게 숨기지 말고 떳떳이 세상에 알리자는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다. 이 운동이 점점 확장되면서 급기야 Gay (남자 동성애자) 와 Lesbian (여자 동성애자) 에게도 상호 결혼을 법으로 허용하도록 하자는 로비가 활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결국 하와이, 버몬트,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뉴욕 등 여러 주들이 앞다퉈 동성결혼 (Same Sex Marriage)을 허용했다.
그 뿐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된 동성애 운동이 무서운 속도로 전세계에 확산됐다.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남아프리카, 스페인 같은 나라들까지도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과거에는 동성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성애자들은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식 부부들에게 부여되는 세금 공제 등 정부의 모든 혜택도 똑같이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는 로비운동을 펼쳤다.
내 의회 사무실에도 몇 번이나 찾아왔다. 이후 동성애 그룹은 점점 더 힘이 강해져 동성 부부도 고아들을 데려다 키울 수 있도록 입양법을 개정하라는 압력이 시작되었다.
이는 공화당 의원들을 극도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연방 의회의 공화당 입장은 대체로 동성부부 문제는 각 주에 맡기자는 것이었는데, 동성애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도를 넘어 이제는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아이들이 성장한 다음 누구를 아빠라고 부르고, 누구를 엄마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남자 2명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교회 계통의 로비스트들이 의사당 앞에 줄을 지어 매일 동성결혼 반대를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동시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쳐서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면서 강력한 반 동성결혼 운동이 불붙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영어사전은 '결혼'을 정의하기를 '서로 같은 인생의 목표를 갖고 한 집에서 사는 것'이라며 1남1녀란 말을 삭제했다. 게다가 한 주에서 동성결혼을 하면 다른 주에서 그 결혼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현행법 때문에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다시 말하면, Gay가 하와이 주에서 동성결혼하면 버지니아 주에서도 그 결혼을 인정해야 하지만 Gay중 한 사람이 다시 여자 신부를 맞이해 결혼하는 것도 허용해야 하는 복잡한 법적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방 의회는 1995년에 DOMA (Defense of Marriage Act)라는 법을 통과시켰다. 내용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을 통과시킨 주는 다른 주에서 결혼을 했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듬 해에 15개 주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DOMA법은 네브래스카 주에서 헌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아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결국 연방결혼개정법안(Federal Marriage Amendment)이 대신 통과되었고, 이 법안은 분명하게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뜻한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이로써 연방법에 따르면 더 이상 미국 땅에서는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지만 개별 주들에서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 '시민결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동성결혼 불허를 반대하는 Gay들의 촛불데모는 없었다.
미국의 결혼 문제는 항상 복잡했다. 법적으로는 1967년까지도 소위 국제결혼 (International Marriage)이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백인 남자가 동양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지금도 동성애자들은 미국 헌법 어디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쳐야 결혼이라는 말이 있느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동성결혼을 압도적으로 찬성하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안에는 다시 법이 뒤집혀, 동성결혼이 미국에서 합법이 되고 말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국은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안에 제 36조를 보면 혼인과 가족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호한다."이런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미국의 헌법보다 훨씬 더 세련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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