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라디오 연설에서 '예산 실명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공직자의 예산 낭비가 탈세와 같은 중대 범죄인 만큼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은 횡령금의 두 배까지 물게 하고, 끝까지 예산 집행의 타당성을 책임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낭비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언뜻 지난해 말 감사원이 제의하고, 이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등 3개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확인한 '적극 행정 면책제도'와 어긋나 보이지만 책임행정의 원칙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의도적 부정ㆍ비리는 엄벌하되, 열심히 일하다가 빚은 결과적 예산 낭비는 면책해 주기 위해서라도 위에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예산 집행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 두는 게 기본전제다.
이런 조치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앞으로 관련 절차나 처벌규정 등을 손질하는 법규 개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당장의 시행보다는 공직자의 기강을 다잡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선행한 셈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공직기강을 거론한 시점에 주목한다. 어제 연설에서 언급됐듯이 이번 선언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잇따라 드러난 복지예산 횡령사건이 직접적 계기다. 국회 심의를 앞둔 추경예산안 등 정부의 적극재정 움직임을 앞둔 사회 일각의 낭비 우려도 배경인 듯하다.
더욱이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현 정부 관계자에게로 번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관심이 커진다.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이미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현 정권 주변의 인사들까지 수사 범위가 넓혀지고 있다. "검찰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청와대의 말처럼 철저하게 비리를 밝혀 일벌백계를 해서 마땅하다.
구체적 비리가 아니더라도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지금, 권력 주변의 자세를 스스로 되돌아보고, 공직기강을 다잡을 때도 됐다. 공직사회 안에서 지난 정권의 잔재를 어느 정도 털어낸 만큼 새롭게 조직화한 부정ㆍ비리가 싹틀 토양도 갖춰진 셈이다. 권력 주변부터 공직사회 바닥까지 철저한 점검과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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