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지콰이 보컬 호란의 청아한 음색과 세련된 어쿠스틱 연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3인조 밴드 이바디가 미니앨범 '송즈 포 오필리어ㆍSongs for Ophelia'를 내고 또 한 번의 색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등장하는 비운의 여인 오필리어를 위한 곡들이란 테마에 맞게 이 앨범은 오필리어를 연기하고 노래하는 호란, 그리고 원작에 가려졌던 오필리어의 생을 응축적으로 표현하는 거정과 저스틴 킴의 연주가 잘 어울려 한 편의 단막극처럼 꾸며져 있다.
앨범에 담긴 6곡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연극을 지켜보듯 머릿속에 햄릿과 오필리어의 슬픈 왈츠가 영상으로 떠오른다. 거정, 저스틴 킴, 호란을 만나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당연히 "왜 오필리어인가"였다.
"그냥 신곡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화가, 소설가 등을 막 뒤졌죠. 그러던 중 딱 눈에 띈 게 오필리어가 물에 잠겨 눈 감은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어요. 그 하나의 이미지를 잡아서 오필리어의 쓸쓸한 사랑을 테마로 하게 됐어요. 보다 고전적인 느낌이 나는 음악은 이런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고요."(호란)
앨범의 소재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곡들에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다. 1집에서 기타 스트링이 전체를 리드했다면 이번엔 여러 클래식 현과 관악기의 등장이 눈에 띄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필리어를 소재로 선택한 다음엔 '햄릿' 원작에서 매우 작은 부분만 드러났던 그녀의 사랑의 감정, 그리고 햄릿과의 짧은 로맨스를 음악으로 재연하기 시작했죠. 6곡 중 첫번째, 두번째 트랙이 사랑에 빠져드는 오필리어를 그린 1막, 슬픔의 대단원으로 치닫는 감정을 담은 세번째, 네번째 트랙이 2막, 이런 식으로 막과 장이 나뉜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아요."(거정)
거정과 저스틴 킴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고 호란이 작사를 하는 등 이번 앨범에선 이바디 멤버들의 분업이 뚜렷해졌다. 오필리어가 느끼는 애증을 실감나게 써나간 호란에게 다른 멤버들은 "오필리어에 대해 가장 정통하다"고 말한다.
호란은 각 곡의 해설을 꼼꼼히 적어 가사집 안에 담기도 했다. "주요 등장인물에 휘둘리는 오필리어의 대사를 잘 읽어보면 사랑 앞에선 강한 면모를 가진 여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요. 대화 안에 감춰진 그의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었죠."(호란, 저스틴 킴)
첫곡 '러브레터'는 처음으로 햄릿으로부터 사랑을 확인한 오필리어의 기쁨을 담았다. 곡을 들으면 마치 중세의 숲을 횡단하는 하얀 드레스의 오필리어를 보는 듯 멜로디가 달린다. "누군가를 쫓아가는 느낌이 강하죠. 사랑을 향한 달리기이지만 그 끝에 비극이 있는 듯한 불안도 있고요. 원래 기타 연주곡으로 만들어진 곡에 보컬을 붙여서 멜로디가 반복되는 부분이 없는 노래입니다."(호란)
W의 이승열이 햄릿으로 등장(피처링)해 호란과 노래하는 두번째 곡 '시크릿 왈츠'는 비밀스럽게 로맨스를 즐기는, 조금은 섹시한 상상이 담긴 왈츠 풍의 노래로 원작엔 없는 둘의 '러브신'이기도 하다. "영화적인 이미지를 음악에 담고 이를 다시 듣는 사람들에게 장면으로 그려주는 곡들이죠. 이승열씨의 보이스가 중후해 호란과 매치하기에 좋았어요."(거정, 호란)
햄릿과의 밀회가 끝나고 결국 정신을 놓은 채 죽음으로 도피하는 오필리어를 묘사한 4, 5번 트랙에 이르면 이바디의 이야기는 종결된다. 그런데 이들의 위트는 여기서 시작이다.
"여섯번째 곡 '커튼콜'에서 비트가 갑자기 강렬해지고 전혀 다른 풍의 일렉트로닉한 느낌의 편곡이 등장해요. 그리고 화자는 말하죠, 허구의 세계는 끝났으니 어서 현실로 돌아와 현실을 살라고요. 그리고 눈을 뜨라고요. 픽션에 빠져서 사는 이들을 꼬집는 메시지입니다."(이바디)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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