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나(36)씨와 잭슨 홍(38)씨. 개성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젊은 현대미술 작가라는 점 이외에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이 공동 전시를 열고 있다. 20일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개막한 '라마라마딩동' 전.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전시를 말하려면 일단 두 작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게 좋겠다.
먼저 홍씨.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삼성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 소비사회의 폐해를 꼬집는 독특한 입체작업을 선보여왔다.
회화를 하는 박씨는 인터넷 마니아들이 즐겨 쓰는 '딩뱃 (dingbat) 문자'를 작품 대상으로 삼는다. 알파벳이나 한글 자음을 컴퓨터 자판으로 치면 그에 해당하는 그림 단위가 뜨는 '딩뱃 폰트'를 활용해 화폭을 채우는 것이다.
두 작가에게 공동 전시를 제안한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디렉터 김성원씨는 작품의 제작과 전시의 구성 등 모든 것을 작가들의 뜻에 맡겼다. 그리고 5개월 후에 탄생한 결과물들은 상당히 적극적인 소통과 협업의 과정을 보여준다.
공놀이하듯 작품을 주고 받으며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한 명의 기획에 따라 다른 한 명이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들 작품의 소유권은 의뢰한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박씨는 "처음에 두 사람의 방식 자체가 너무 달라서 서로의 언어를 터득할 필요가 있었다.그래서 각자가 기획자가 되어 상대방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방식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두 대의 자동차가 충돌하는 이미지를 제안한 홍씨의 아이디어를 만화적 구도와 팝아트 스타일로 구체화시켰다. 그리고 홍씨는 여기에 프로레슬링 용어인 '스플래시(Splash)'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만든 '퍽(Puck)'은 3차원 공간 작업이다. 벽면에 나무 바닥재가 깔려있고, 아래쪽에 뚫린 70㎝ 높이의 구멍에는 자동차를 정비할 때 쓰이는 빨간색 바퀴달린 등받이 차가 놓여있다.
그 차를 타고 누운 채 구멍 속으로 들어가야 공간의 내부를 볼 수 있다. 평소 바닥을 올려보고 싶었다는 박씨와, 천장을 내려보고 싶었다는 홍씨의 생각을 합친 것이라고 하는데, 두 물체가 부딪힐 때 나는 소리를 제목으로 삼은 데서도 알 수 있듯 두 작가의 만남과 심리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들이 이런 여러 작업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완성한 설치 작품이 '라마라마딩동'이다. 가로 세로 2m의 흰색 박스를 중심으로 그 위아래에 공룡, 코뿔소, 자전거, 화살표 등 1,000여개의 아기자지한 아크릴 오브제를 설치했다.
홍씨가 그만의 새로운 딩뱃 폰트를 디자인하고, 박씨가 각 오브제의 사이즈와 컬러를 결정했으며, 그것을 다시 홍씨가 입체화시킨 후 마지막으로 박씨가 공간에 재배치했다. '라마라마딩동'은 1950년대 말 미국 로큰롤 밴드 엣젤스(Edgels)의 노래 제목인데, 이 밴드의 이름은 포드 자동차의 모델명이기도 하다.
홍씨의 이력과 박씨의 '딩뱃 회화'가 묘하게 접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홍씨는 "작가라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그런 부분을 풀어볼 수 있었다. 플랫폼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남자와 여자가 몸을 바꾼다는 내용의 영화 '스위치'처럼 작가들이 서로의 뇌와 몸을 바꿔서 상상 속의 작업을 구현하고 시험해봤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매력"이라고 평했다. 5월 12일까지. (02)3015-3248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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