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AIG를 향한 미국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 상원의원은 "경영진은 사과한 뒤 물러나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끔찍한 말을 했다. 항의 전화와 살해 위협 이메일이 회사로 쏟아지고 있다. AIG의 보너스 지급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싸늘한지 알 수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검찰총장의 조사에 따르면 640만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직원이 있고 100만달러 이상을 받은 직원도 73명이나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보너스가 아니다. 회사는 정부 지원을 받기 전에 직원들과 보너스 계약을 했고, 그 계약에 맞춰 보너스를 주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한다.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부서에까지 그런 논리를 앞세워 보너스를 지급했다.
그렇지만 AIG에는 1,800억달러(256조원)의 구제금융이 들어가 있다. 국민 혈세로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처지다.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당장 망할 회사, 그 회사가 직원과의 약속을 입에 올리며 보너스 잔치를 했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을까. AIG만 그런 게 아니다. 메릴린치 역시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되기 전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나눠준 적이 있으니 미국 금융회사의 도덕적 불감증 수준을 짐작할 만 하다.
다들 알겠지만 지금 전세계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미국의 금융권에서 시작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그들의 투기가 한계에 이르면서 세계 경제가 무너졌다. 미국 금융회사 사람들은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수익 극대화를 꾀했다고 하겠지만 그들과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월가에 발 한번 디딘 적 없는 사람들은 그 때문에 경제적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금융회사는, 그곳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보너스 파동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리어 돈을 향한 인간의 무한 욕망이 얼마나 집요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한 개인이 혹은 한 사회가 한번 돈에 압도되면 그것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 AIG 보너스 파동은 보여준다.
돈에 대한 맹신이 유난한 한국 사회 역시 그런 점에서 보면 이만저만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구성원의 교육 및 지식 수준 등에 견줄 때, 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착은 유별나다. 10여년 전 겪은 외환위기가 한 이유일 것이다. 수십 년 성장 정책이 벽에 부닥친 뒤 우리가 겪은 그 끔찍한 경험은 지금도 돌아보기 싫다. 그렇지만 당시의 아픈 기억을 이해한다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금전 숭배주의가 정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금전 숭배주의가 갈수록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경제라는 이름을 걸어, 그 어떤 사회적 가치도 무색하게 만든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경제 위기 역시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전 집착 현상이 계속되면 그것이 다시 무한 욕망으로 이어지면서 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그것은 경제 위기 극복과는 별개의 문제다. AIG의 보너스 잔치와 그것이 상징하는 인간 욕망의 노골적 표출을 바라보면서 돈에 대한 더 이상의 숭배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광희 국제부장 직대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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