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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흡연권과 혐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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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흡연권과 혐연권

입력
2009.03.1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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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무덤가에 핀 담배 꽃/ 그 꽃 한 줌 꺾어다가 말아 피웠소/ 또 한 줌 꺾으려다 눈물이 났소/ 너울너울 담배연기 간 곳이 없네.' 1970ㆍ80년대 대학가에서 자주 불렸던 <고향꿈> 의 한 소절이다. 노랫말의 '눈물'은 담배 연기가 눈을 찔러서가 아니다. '너울너울'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봄이면 부쩍 더 고향이 그립고, 양지바른 아버지 산소가 자주 눈앞에 어른거린다. 마른 잔디 사이로 고개를 내민 할미꽃 옆에서 청량한 숲 내음과 함께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일 때의 그 넉넉함과 포근함이란.

■애연가라면 특정 장소와 결합된 흡연의 추억 한둘은 갖고 있다. 담배를 배운 과정에 따라 다르다. 숨어 피우기로 시작한 사람들의 화장실이나 골방, 군대의 '10분간 휴식'이 계기가 된 사람들의 사격ㆍ유격 훈련장 등이 그렇다. 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서도 다르다. 바닷가나 강가, 숲과 계곡, 산 꼭대기, 골목길, 공원 벤치 등이다. 다만 좁은 공간보다는 넓은 공간, 틀어 막힌 곳보다는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이 애연가들의 마음이다. 담배라면 냄새조차 싫어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담배를 즐기는 사람도 남의 담배 연기는 싫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하반기부터 '간접흡연 제로 서울'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해 거리와 광장, 공원, 아파트 단지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소식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당이나 택시 등은 물론 버스 정류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길을 가다가 콧속으로 파고 드는 생 연기에 시달린 기억으로 보아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에서는 '보행 중 흡연 금지'도 필요하다. 그러나 어지간한 공원이나 놀이터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데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강제력을 결여한 조치의 실효성도 문제지만, 애연가들의 흡연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헌법재판소는 흡연권과 혐연권 둘 다 헌법 10조(행복추구권)와 17조(사생활의 자유)에 근거한 기본권으로 보았다. 다만 혐연권은 건강ㆍ생명권에 비추어서도 인정되는, 흡연권보다 우월한 권리여서 둘이 충돌하면 흡연권이 양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잣대는 이른바 '간접흡연'이다.

간접흡연 가능성이 없다면 기본권 '충돌'은 문제되지 않는다. 담배 냄새를 이유로 아내가 바가지를 긁을 수는 있어도, 흡연권을 핍박할 수 없는 것은 '겨드랑이 냄새'를 이유로 공공장소 출입을 금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간접 흡연을 최대한 막되, 시간ㆍ공간적으로 그 가능성이 없는 경우라면 흡연권도 배려하는 것이 민주적 행정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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