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정규직 채용이 자취를 감췄다. 올 들어 전체 채용 공고 중 정규직 채용은 고작 10%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집계됐다. 온통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짜리 청년인턴 채용 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턴 채용을 장려하면서, 올해 졸업생들은 ‘신의 직장’에 취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셈이다. 청년인턴이 정규직을 구축(驅逐)하는 모양새다.
16일 공공기관들이 공공기관 경영정보공시 시스템(알리오)에 등록한 올해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총 279건의 신규 채용 중 정규직 채용은 11%인 31건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상당수는 기관장, 임원 등을 포함한 경력직으로 신입 정규직 채용은 18건에 그쳤다. 대졸자들이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길은 사실상 꽁꽁 막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90% 가량은 계약직, 그 중에서도 대부분 청년인턴직이 차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올해 전체 채용 공고 279건 중 계약직이 248건에 달했고, 이중 청년인턴 채용이 175건이었다. 전체 채용 10건 중 9건 가량이 계약직이고, 이 중 6건 이상은 청년인턴 채용인 것이다.
올해 305개 공공기관들이 채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청년인턴은 총 1만2,000명 가량. 공공기관 1곳당 평균 40명에 육박한다. 대졸 초임 삭감 등으로 마련한 재원을 청년인턴 채용에 쓰겠다는 것인데, 당연히 정규직 채용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 공공기관 인사 담당자는 “사실상 청년인턴 채용이 의무할당량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정규직 채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인턴이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정부는 평가 결과 우수 인턴에 대해 정식직원 채용 시 인센티브를 주도록 각 공공기관에 권고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곳들이 상당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일반행정 및 기술지원 청년인턴을 채용하면서 “인턴직으로 채용되더라도 추후 정규직 채용과는 관계가 없다”고 못을 박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 녹색사업단, 국제방송교류재단 등 역시 “인턴 종료 후 정규직 임용이나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은 없다”고 명시했다.
다른 공공기관들 역시 향후 정규직 채용 우대 부분에 대해 아예 언급을 하지 않거나, ‘우수 인턴에 대해 정규직 채용 시 우대 예정’ 등의 모호한 지침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청년인턴 채용 바람이 민간 기업까지 확산되는 등의 임기응변적 대응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며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공공기관이 앞장 서서 정규직 채용을 늘려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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