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벽 예멘에서 사망한 관광객 4명의 비보를 접한 유족들은 이른 아침부터 황급히 이번 여행을 주관한 서울 종로구 T여행사로 달려 나왔다.
아내 신혜운(55)씨와 함께 변을 당한 주용철(59)씨의 동생 용수(56)씨는 "새벽 3시쯤 전화를 받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아침 8시에 여행사로 나왔다"며 "믿어지지 않고 실감나지 않는다"고 침통해 했다. 주씨의 큰 형과 대구에 사는 막내 남동생도 오전 여행사를 찾아 황망한 표정으로 여행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유족들에 따르면 슬하에 자녀 없이 올해 결혼 31년을 맞은 주씨 부부는 평소에도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는 금슬 좋은 부부였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했던 주씨는 부인과 여행 계획이 생기면 주저없이 사무실 문을 닫을 정도였다고 한다.
용수씨는 "사고 현장에라도 가면 좋을 텐데 여권이 없어 가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굴렀다. 주씨 부부가 살던 암사동 인근 주민들은 "두 사람은 평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고, 부인도 털털한 성격이라 주민들과 함께 잘 어울렸다"며 이들의 사망소식을 안타까워했다.
앞서 오전 4시쯤엔 김인혜(64)씨의 남편인 윤구(64) 전 문화일보 논설주간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여행사를 찾았다가 귀가했다. 오전 양천구 목동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난 윤씨는 "아내가 평소엔 휴대폰을 갖고 여행을 갔는데 이번엔 두고 가서 통화를 못했다.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 직접 데려다 주면서 귀국할 때 마중 나오겠다고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가 몇 해 전부터 지인들과 이집트, 터키, 요르단 등 중동 여행을 인생 황혼기의 유일한 낙으로 삼아왔다"고 전한 윤씨는 "예멘의 위험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가족들한테 제대로 얘기도 못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웃에 사는 정모(63)씨도 "자식도 없이 남편과 다정히 살아가던 분이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희생자인 박봉간(70) 전 언론중재위원의 큰 딸은 "아버지께서 예멘에 여행 가신 게 맞다. 저희도 아직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며 울먹였다. 큰 딸을 비롯한 유족들은 오전 강남구 삼성동의 고인 자택에 모여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대책을 논의했다.
역시 이른 아침부터 여행사를 찾은 부상자 가족들은 부상 정도가 비교적 가볍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부상자 박정선(40)씨의 동생은 "사고 소식에 놀라 언니와 직접 통화했는데, 등에 긁힌 상처가 난 것 외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홍선희(54)씨는 등에 박힌 폭발물 파편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지만 활동엔 큰 불편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요르단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여행 가이드로 따라 나섰던 손종희씨의 부상도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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