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금 국내외 경제 전선에서 2개의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벌이는 전쟁보다 더 어려워도 대선 때 공약한 미국적 가치의 재건과 세계 리더십의 복원을 위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그 전쟁의 양상과 결과에 따라 미국은 물론, 지구 전체의 삶이 중대한 영향을 받게 되니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한미 "정치권이 발목" 동병상련
첫 번째는 지난달 내놓은 연방정부의 2010년 회계연도의 예산안을 둘러싼 논쟁이다. 총액 3조6,000억원(GDP의 24.8%) 중 절반 이상(1조7,500억달러)이 적자로 짜여진 전후 최대 규모도 논란이지만 그 안에 배어 있는 철학은 민주당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핵심은 연 소득 25만달러 이상인 260만 가구와 다국적ㆍ에너지기업 등에서 1조달러의 세금을 더 거둬 의료보험 개혁과 공교육 강화 에너지 효율화 등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공화당에선 '로빈후드 식 발상'이라는 비아냥이, 민주당에선 '자선사업'이라는 냉소가 터져 나왔다. 승자독식의 월가 게임으로 병든 미국사회를 개조하겠다는 오바마 정권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예산안의 운명은 극히 불투명하다.
두 번째 전쟁은 글로벌 경제위기 처방으로 내놓은 세계적 규모의 재정지출 확대에 대한 국제적 공조, 특히 유럽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엊그제 끝난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연석회의에서 미국은 동북아의 지원에 힘입어 재정지출 확대와 보호무역 배격을 골자로 한 합의문을 이끌어냈지만, GDP 2%라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관철하는 것은 실패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이 글로벌 금융ㆍ실물 위기의 책임을 따지며 금융규제 시스템의 개혁이 먼저라고 미국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이 의제는 4월 초 G20 정상회의로 넘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아직 6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의 집권공약과 글로벌 리더십을 시험하는 두 개의 전쟁에서 패퇴한다면 그는 집권 초부터 정치적 코너에 몰릴 위험이 높다. 집권 초 내놓았던 금융안정계획과 경기부양대책이 시장과 의회의 낙제점을 받는 등 불씨도 많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수렁에 빠진 경제를 구해내기 위해 역대 최대규모가 될 30조원 대의 추가경정예산을 서둘러 편성하고 금융산업 구조개선법과 채무보증동의안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입법도 4월 중엔 처리하겠다고 한다.
이것을 근거로 정부는 며칠 전 6조원 대의 서민생활 지원대책을 제시하고,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기관 부실에 대비한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론의 지지를 업고 추경과 법안의 국회처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뜻이 쉽게 읽힌다.
야당은 적자국채의 과다발행, 불투명한 지출내역, 금융권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 조장 등을 이유로 정부안을 세밀하게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나 힘에 겨워 보인다. 세계 경제의 불황이 적어도 2~3년간 이어지며 대공황은 아니더라도 대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인 데다 급기야 국내에서 올해 일자리가 많게는 50만개나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터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해외 순방에서 보고 들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예시하며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안타깝다"며 야당에게 화살을 겨눴다. 혹자는 로비스트가 날뛰는 워싱턴 정치에 염증을 내는 오바마처럼, 정쟁으로 날을 지새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 대통령의 불신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네가 그렇게 하면…' 배려 필요
하지만 이런 태도는 모든 국정행위는 정치로 환원된다는 간단한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담대한 희망> 에서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가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를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요즘 이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만약 이 대통령이 그 원칙을 존중한다면 야당은 참으로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담대한>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