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정동영과 손학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정동영과 손학규

입력
2009.03.16 23:57
0 0

대통령선거와 총선에서 잇따라 낙선한 뒤 지난해 7월 미국으로 건너가 은둔 생활을 해 온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시에서 한국특파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무척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간담회장에 들어선 그가 꺼낸 말은 4ㆍ29재보선에서 전주 덕진에 출마하겠다는 것이었다.

정 전 장관이 한창 간담회 중이던 바로 그 때(한국시간 13일 아침) 정 전 장관과 비슷하게 대선후보 경선과 총선에서 실패해 강원 산골에서 지내 온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침 일찍 새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처럼 구름 속으로 아련히 흐르는 산맥을 바라보며 오랜 사색에 빠져 있다가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는 정 전 장관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계속 살아 내야 할 '은둔자의 삶'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지만 이내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을지도 모른다.

정 전 대표의 출마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엄청나다.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그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다 복귀한다' '총선 때 서울 동작에서 출마했다 낙선했는데 이제 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덕진으로 옮긴다' '개혁공천을 해야 민주당이 사는데 그가 나오면 이 구도가 깨진다' 등이 반대 논리다.

대선 책임론의 경우 대선후보였던 그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문제도 있었다는 점에서 모두 그의 잘못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덕진 출마는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선택의 자유'로 존중받을 부분도 있다. 개혁공천 불가론 역시 일리 있는 얘기지만 덕진에서 확실한 한 석을 건지고 수도권으로 파급을 모색한다는 정 전 장관 측의 전략 또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민주당에서는 반대론이 적지 않은 세를 얻고 있는 것일까. '정치란 타이밍의 예술'이란 말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때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여러 문제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출마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반성하고 노력했다는 얘기가 국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다.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는데 너무 서두른 것이다.

정 전 장관이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개인적 손해도 크다. 그는 이번 출마 선언 때문에 무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이 싸움에서 밀려 공천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큰 타격인가. 낙천이 예상될 경우 공천 신청을 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나가면 당선은 되겠지만 향후 그의 울타리가 없어지는 셈이어서 대권 꿈을 꾸는 그에게는 결정적 하자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공천이 되더라도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재보선 결과가 안 좋으면 모든 화살은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는 외국에 더 머무는 쪽으로 결정했어야 했다. 정쟁에서 한 발 피한 채 지금까지처럼 '큰 정치'를 하는 것이 좋았다. 잊혀질까 걱정도 됐겠지만 결국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이런 점에서 손 전 대표는 잘 견디고 있다. 손 전 대표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수록 사람들은 그가 지난 시절의 책임에 충실하려 했다고 여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은둔은 외롭지만 헛되지는 않다.

이은호 정치부차장 leeeun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