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위 무어 지음ㆍ차미례 옮김/미래인 발행ㆍ440쪽ㆍ1만6,500원
"부스는 그날 두 번이나 위협적인 대사를 읊조리면서 손가락을 링컨 대통령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링컨은 그에게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연극이 끝난 뒤 '대통령이 좀 만나자고 한다'고 했으나 부스는 링컨의 초대를 거절했다. 만약 그때 두 사람이 무대 뒤에서 만났더라면, 그래도 부스는 1865년 같은 극장에서 링컨을 암살할 수 있었을까?"(261쪽)
이 책은 '역사는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격언을 100가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만남부터 아이슈타인과 프로이트, 재키 케네디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까지 흥미로운 만남이 빽빽하다. 그러나 등장하는 이름의 유명세에 비해 이 책 속 만남의 풍경은 낯설고 우연적이다. 저자는 각 인물들이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전, 양자가 아직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들을 모았다.
예컨대 이런 만남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 대표로 환영사를 낭독한 인물은 로베스피에르(훗날 그들을 단두대로 밀어넣은 장본인)였다. 영국의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 에드위 무어는 이런 만남이 역사를 움직였다고 말한다.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역사의 굵은 줄기 틈틈이 끼어 있는 이색적 삽화를 목격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옮긴이의 말대로 사람들은 "혁명의 불꽃보다는 그 불을 피운 성냥 또는 불쏘시개, 누가 어떻게 사고를 쳤느냐에 관심이 더 쏠리기" 때문인지 모른다.
베토벤과 괴테의 에피소드를 보자. "베토벤과 괴테가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오스트리아 왕비 일행과 마주쳤다.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인간보다 천재성을 타고난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공언한 베토벤은 괴테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길을 비켜야지, 우리가 비켜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괴테는 궁중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이 장면은 새롭게 떠오르는 낭만주의 예술의 천재가 낡은 구시대의 관습을 짓밟은 기념비적 사건으로 전해진다."(207쪽)
편년체로 기술된 엄격한 역사만 읽던 독자에게 이런 만남들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짤막짤막한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들이 왜, 어떻게 만났으며 그 만남이 역사에 어떤 파장을 미쳤는가'라는 상상의 타래에 삐죽 튀어나온 끈 같다. 그 끈을 붙잡고 역사의 디테일을 풀어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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