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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혼을 치유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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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혼을 치유하는 예술

입력
2009.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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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낳은 첫 애 아니냐. 니가 나 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 한티는 새 세상인디… 고단할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 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 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 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 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삶에 지친 영혼의 갈망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의 한 구절을 기숙사에 있는 첫 아이에게 문자로 보낸다. 깊은 밤 이미 단잠에 빠져 있을 아이지만 글 선물을 하고 나니 기분이 평온해진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온갖 시행착오를 하면서 아이가 커가는 것 자체가 기쁨이자 죄책감인 내게 이 구절은 엄마 마음과 내 마음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느낄 마음을 함께 포개어 놓는다.

예술에는 근본적 치유의 힘이 있다. 문학만이 아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 의 흥행의 이면에는 이름도 받지 못한 소와 농부의 세월을 초월한 애련한 인연의 되새김질이 오롯하다. 관객들은 느리게 사는 것, 늙어 사라져 간다는 것의 존재론적 무상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연세의료원은 환자의 '체감 대기시간'을 줄여주고 예술치유 효과를 얻기 위해 박수근 김환기 등의 그림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예술을 체험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일. 그것은 기억의 수로를 따라 걷는 작은 여행이고, 고통 받기에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축복 받은 자의적 행위이다. 파올로 닐(Polo Knill)에 따르면 예술치료는 예술을 통해 인간 내면에 고통이 '와서 머물다(coming-to-be) 가는 (passing away)' 변증법적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예술치유 기능이 왜 이 순간 우리에게 절실히 다가오는지 멈춰 서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워낭소리> 의 흥행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반응하는 이 땅 사람들의 낮은 통곡과 애도를 함께 하며 참으로 우리가 지금 지쳤다는 것, 자본주의 속도전에 떠밀려 살면서 더 근본적인 느린 모듬살이의 원형을 상실했다는 것, 그것을 애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울고 싶은 관객 뺨을 때려 주겠다'며 기획 장르를 양산한 상업적 논리로는 도저히 포섭할 수 없는 깊은 상념과 비통의 힘이 대한민국을 휘젓고 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성공'과 '속도'라는 두 축의 근대적 동력이 날개를 잃고 비틀거릴수록,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숨통을 죄어 올수록, 억누를 길 없이 솟구치는 구원과 치유를 향한 갈망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문화예술계는 관객들의 무의식적인 갈망을 제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미술계에서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의 진위가 세간의 관심사가 되면서 미술마저 자본주의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파행을 연출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아카데미 수준작들에 밀려 독립영화의 저력으로 간신히 맥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출판계에서는 <엄마를 부탁해> 를 제외하고는 처세술, 경제서, 자기계발서 일색이다.

예술의 책무에 헌신하기를

대체 우리는 어디서 이 척박한 영혼의 터를 일깨울 깊은 우물을 만날 것인가. 분명 시대가 원하고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치유에의 목마름을 과연 대한민국 예술계는 채워주고 있는 것일까. 영혼 깊이 똬리를 튼 향수와 상실감과 고단한 슬픔 마저 경제적 논리로 강제철거 할 수는 없을 터.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또 다른 예술의 책무에 성실한 헌신을 기다린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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