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프놈 펜(pen) 몇 자루나 몬테 비데오(video) 한 편 가지고 할머니를 꾀긴 힘들다 할머니가 당신 면전에 정신없이 미얀마 같은 뉴(new) 욕사이, 판베이 징(gong)을 쳐 대거나 미친듯이 시카 고(drum)를 두드리란 말이다 놀란 노인네는 필경 군말 없이 그것들을 빌려줄 것이다…'('')
혹여 시인을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생동감 있게 조탁하는 존재'라고, 한국 현대시의 오랜 명제에 복무해야 하는 이라고 믿어온 독자들이라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질 수도 있겠다. 오은(27)씨는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민음사 발행)에서 한국어/외국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채, 혹은 더 나아가 숫자와 언어, 기호와 언어의 경계를 무너뜨린 채 한바탕 말의 난장판을 펼쳐보인다. 호텔>
"외국어 사이에 우리 말이 던져질 때 그 낯섬을 보여주고 싶다. 거기서 재미를 느끼도록 하고 싶다"는 오씨의 언어실험은 전복적이다. 그것은 위의 시처럼 뉴욕(New York)이라는 외국 지명을 의뭉스럽게 토막낸 뒤 그 한 음절을 '욕'이라는 우리 말의 의미로 치환하는 식, 혹은 '제인'이나 '한스' 등 영어나 독일어의 고유명사 같은 단어들을 한국어의 자장 속에 귀속시킬 수는 없는가를 묻는 방식이다.
한국어/외국어 경계 허물기 작업의 결과물들이 보여주듯, '무엇을' 쓰는가보다 '어떻게' 쓰는가에 방점을 두고 있는 오씨의 실험은 흥미롭다.
그는 '무시무시한 무시를 당하고 시들시들한 시들을 적었다'('폭력의 역사'에서)처럼 유사한 소리의 낱말 병치하기, '쥐구멍에는 볕 대신 병이 들었고 고생 끝에 찾아온 건 낙이 아니라 막이었다'('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3'에서)처럼 속담이나 신화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혹은 '지하철을 탑니다.
초록색은 2호선, 주홍색은 3호선. 어렵지 않아요. 대가리가 있다면요'('21세기 어린이'에서) 처럼 뜨악한 낱말을 배치하기 등을 그 전략으로 채택한다.
단어의 질감을 중시하는 언어감각,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에 기댄 유희성은 그의 시들이 발산하는 친화력이다. 그러나 그의 말놀이 시들을 읽고 난 뒤 느껴지는 어떤 불편함이나 씁쓸함은 시인이 단순히 말초적 쾌감을 시작(詩作)의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음을 알게 한다.
가령 '느닷없이 접촉사고/ 느닷없이 삼각관계/ 느닷없이 시기질투… 느닷없이 해피엔딩'처럼 8자 16행의 수학적 형태로 배열된 시 '미니시리즈'는 현실의 고통의 원인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거짓 위안'으로 몰각시키려는 대중문화의 기만적 속성을 꿰뚫고 있다.
'먹다' 라는 동사 앞에 밥, 김, 똥, 본드, 검은 돈, 공금, 뇌물, 영혼 등의 명사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시 '식충이'는 부패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속물적 행태를 비꼬고 있다.
'21세기 어린이' 같은 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조숙한 어린이'가 오은 시의 주요 화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청년들이 중요한 화자였던 1980, 90년대의 시들이 현실과 대결할 것을 주문했지만, 이제 그런 식으로 정색을 하고 훈계나 계몽을 하는 방식은 21세기 독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한 방식으로 전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숙한 어린아이가 현실에 대해 지껄였을 때, 기성세대들은 '허… 요놈 참' 하면서 잽을 맞는 듯한 아픔을 느낄 수 있겠지요."
"재수 시절 끄적끄적 시 비슷한 것을 써봤을 뿐 대학에 들어와 사회학을 전공하며, 시 전문 훈련을 받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쓴 것이 오히려 '언어의 스트레칭'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자신의 시작의 비밀을 내비친 오씨는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했고 영화, 미술, 미디어 등에 전방위으로 관심의 촉수를 뻗치고 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디지털 미학을 파고들 계획. 연내 '로봇 서사'를 주제로 한 석사학위 논문을 정리한 문화비평서와 미술산문집도 펴낼 예정인, 에너지 넘치는 '앙팡 테리블'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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