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바마 정부가 지난달 중순 2조달러 규모의 금융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대형 금융기관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화한다는 조건을 단 이후, 우리 주변에서 이 말의 사용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경제학 용어사전에 이 말은 '예외적이지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 터졌을 때 금융시스템이 받게 되는 잠재적 손실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정의된다. 씨티그룹, 뱅크오프 아메리카 등 자산규모 1,000억달러 이상의 금융기관은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구제자금을 받을 수 있는데, 대상 기관들은 결과보다 테스트 과정에서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다.
▦ 국내에서도 환율이나 성장률, 금리와 같은 변수를 시나리오 별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여신 부실규모와 자산건전성을 진단하는 작업이 18개 은행에 대해 최근 실시됐다. 금융당국은 엊그제 그 결과를 발표하며 "경제성장률이 –3%까지 떨어져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밑으로 내려가는 은행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올해 40조~50조원 대의 부실채권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각 은행들이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고 그 뒤에 은행자본확충펀드도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테스트의 잣대가 너무 말랑말랑하고 결론도 지나치게 재빠르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8% 성장률 전망을 내놓았고 여타 연구원들도 –5% 주위를 맴돌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라면 응당 이 수치를 적용하는 게 맞다. 음모적으로 말하면 성장률 하락에 맞춰 금융기관의 체력을 따진 것이 아니라, 그 체력이 견딜 수 있는 성장률을 역으로 계산한 느낌마저 준다. 더구나 미국 금융기관들은 이 테스트를 받느라고 한 달 이상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우리는 수박 겉핥기식 테스트란 인상이다.
▦ 경기침체의 폭과 깊이를 점치기 어려운 요즘, 개인과 가계도 엄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봄이 멀지 않았다" "하반기엔 희망의 싹이 보일 것"이라며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데 열심이지만 '벼랑에서 떨어진'(워런 버핏) 미국경제의 몰골이나 "경기하강이 예상보다 깊고 길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진단을 감안하면 고난의 여정을 이겨낼 행낭을 단단히 꾸리지 않으면 안 된다. 고용과 소득 변수의 최악 상황을 가정하고 원점에서 지출패턴을 새로 설계하는 스트레스를 외면하면 머잖아 감당 못할 스트레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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