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장순업(62ㆍ한남대 교수)씨의 작업실은 경기 광주 곤지암 인근의 산기슭에 있다. 큼직한 대형 창문으로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20년째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장씨는 "작업실 주위에 핀 꽃만 해도 몇 백 종류가 넘는다"고 자랑했다. 소나무를 심고 잔디를 깎는 주위로 가끔 학과 두루미가 날아들고, 연못에는 물오리가 유유히 떠다니는 곳이란다.
장씨의 그림에는 이런 그의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장씨는 "내 그림은 별 게 없다. 생활이 그림이고 그림이 생활이 된다"며 웃었다.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거니까요. 밥 먹을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머리는 늘 작업실 캔버스에 가 있습니다."
장씨가 1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오랜만인 만큼, 규모가 크다. 1,000호짜리 1점, 500호짜리 3점 등 대작을 포함해 모두 80여점의 신작을 내놓았다. 두루미, 학, 나비, 오리, 진달래, 목련, 수련 등 그의 일상 속 소재들이 그림 속에 내려앉았다.
작가는 캔버스에 돌가루, 황토를 바르거나 한지를 붙여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고, 그 위에 다채로운 기법을 더했다. 스프레이로 물감을 뿌리기도 하고 나이프로 긁기도 하고, 발묵 효과까지 시도했다.
과거 장승, 하루방 같은 민속적 소재들을 그릴 때 전체적으로 어두웠던 화면은 생명을 가진 소재들을 위해 빨강, 노랑, 파랑 등으로 한층 밝아졌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1,000호짜리 작품 '빛과 시간의 이야기(춤)'은 장구를 두드리며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커다란 롤러로 단번에 그어내린 먹선들이 까슬거리는 장삼 자락의 휘날리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표현한다.
작가가 집중적으로 선보인 '빛과 시간의 이야기' 연작은 자연의 순간을 직관적으로 포착한 감성적인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자유롭고 율동감이 넘친다.
장씨는 "예전에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민화나 단청, 춤 같은 것들을 보러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 의식이 없어도 순간적으로 어떤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것을 느끼는 순간, 그때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02) 3210-0071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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