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거물급 인사 두 명의 4ㆍ29 재보선 공천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박희태 대표와 정종복 전 의원이다. 박 대표는 울산 북구와 인천 부평을을 놓고 마지막 고심을 거듭하고 있고, 정 전 의원은 자신의 17대 지역구였던 경북 경주에 공천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두 사람 모두 공천이 유력하다는 게 한나라당의 현재 분위기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동시에 공천을 주는 것은 모순(矛盾)"이란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1년 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물갈이 공천'을 하면서 내걸었던 명분과 지금의 공천 흐름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경남 남해에서 5선을 지낸 박희태 대표도 그 때 낙천의 고배를 마셨다. "물갈이를 통해 신진인사를 영입, 당에 활력을 주려 한다"는 게 당시 공천심사위의 변이었다. 그런 한나라당이 다시 박 대표를 전략공천 하려 하자, 당내에선 "1년 전 낙천에 대한 해명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지역 구민들이 '물갈이 할 때는 언제고 다시 우리 지역으로 보내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 거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측은 "18대 총선 공천은 일부 인사들의 사천(私薦)이었다. 박 대표는 이후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되면서 복권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잘못된 공천의 피해자이므로 출마 자격이 있다는 논리다.
결국 한나라당이 박 대표를 전략공천 하자면 18대 공천의 과오를 인정하고 가야 한다. 최근 서울 금천 출마설이 흘러나오는 김덕룡 국민화합특보도 마찬가지다. 김 특보 역시 '잘못된 공천의 희생자'라는 논리를 발판 삼아 재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한나라당이 이 명분을 택한다면 경북 경주에 공천을 신청한 정종복 전 의원이 목에 걸린다. 정 전 의원은 18대 총선 당시 사무부총장이자 공천 실무를 관장한 공심위 간사였다. 박희태 대표측 논리대로 18대 공천이 잘못됐다면, 정 전 의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총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측은 이재오, 이방호, 정종복 전 의원 등을'사천 3인방'으로 지목, 거세게 비난한 바 있다.
만약 박 대표가 울산 북구에 나서고, 지척인 경북 경주에서 정 전 의원이 공천을 받으면 그림이 묘해질 수 있다. "작년 총선 공천이 잘못됐다"는 당 대표와 그 때 공천을 담당했던 인사가 동시에 한나라당 간판으로 나선 격이 되기 때문이다.
한 비주류 초선 의원은 "당이 박 대표와 정 전 의원을 함께 공천한다면, 논리와 명분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정당의 공천은 그 자체가 국민을 향한 메시지이고 정치행위다"며 "그런데도 앞뒤도 안 맞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모순의 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