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성폭력 파문으로 인한 집행부 총사퇴, 현대차 조합원 간부들의 도박 사건, 인천지하철노조의 조합 탈퇴 추진, 심각한 내부 계파 갈등…. 최근 안팎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전국민주노조총연맹(민노총)이 12일 내부 각 정파, 외부 정당과 시민단체로부터 매서운 질타와 위기 타개책을 구하는 '혁신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울 영등포구 민노총 7층 강당에서 오전 10시30분부터 10시간 동안 총 17명이 발표에 나선 이날 토론회는 진보 정당과 시민단체 등 바깥의 시선에서 민노총의 위기와 과제를 제시한 1부, 내부 정파와 산하 조직 관계자들이 의견을 개진한 2부로 나눠 진행됐다.
임성규 민노총 비대위원장은 "최근 발족한 노동운동혁신위원회에서 이번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실천 과제를 도출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중에 다가서야"
외부 인사들은 한결같이 민노총이 초심을 잃고 정규직 근로자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료조직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정성희 민주노동당 상임위원은 "민노총의 현재 위기는 사회주의 붕괴 과정과 닮았다. 변화의 열정은 사라지고 양적 성장에만 자족하고 있다"며 "현장을 중시하는 '전태일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지난해 핵심 간부들이 촛불시위로 체포될 때 악 한 번 못 썼고, 연말 'MB악법 저지 투쟁' 현장에도 민노총은 없었다. 조직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성폭력 사건은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기존 노동운동 관행에 매몰된 결과로, 민노총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말했다.
이들은 민노총이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 소외계층을 끌어안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실장은 "내년부터 복수노조제가 시행되면 노동운동계가 분열하고, 민노총은 소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면서 "비정규직,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총이 노동운동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왜 늘 점퍼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왜 천편일률적인 집회를 여느냐"며 "사무실을 일반에 개방하거나 교육, 주거, 대학 등록금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엇갈린 내부 목소리
정파 간 차이를 반영한 듯, 내부자들의 문제 진단과 해결책은 엇갈리곤 했다. 민노총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부터 달랐다.
이승우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의장은 "우리는 '이렇게 합시다'가 아니라 '그건 아니고'로 시작을 한다. 새로운 의제와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조형일 혁신연대 집행위원은 "문제 파악과 진단이 잘못됐다기보단, 혁신 과제가 단기간에 소수에 의해 만들어진 뒤 조직 갈등으로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된 게 위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위기 정도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은 "민노총은 내부 곳곳에 암이 자라 머지 않아 사망할 위기에 다가서고 있다.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데 비해, 이승우 부의장은 "민노총이란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격하다. 여전히 리모델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역 및 산별 노조원들은 중앙 집행부에 화살을 돌렸다. 박준석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집행부가 현장을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파업을 결정해 지시하니까 '뻥파업'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중앙 조직은 교육과 정책 개발에 전념하는 방향으로 슬림화하고, 남는 인력과 예산은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승희 서울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성폭력 사건이 이번 토론회의 결정적 계기인데도 부차적 주제로 취급받고 있다"며 "집행부에 성평등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민노총이 비정규직 등 다양한 노동계층을 포용해야 한다는 데엔 의견이 일치했다. 한석호 전진 집행위원은 "비정규직이 50%를 넘는 현실에서 기존 노동운동은 이미 정당성을 잃었다"며 "비정규직 등 노조의 보호를 못 받는 이들을 조직화하는 사업에 민노총 인력과 예산의 절반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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