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활성화를 강조할 때 '메기이론'이 흔히 인용된다. 미꾸라지는 물론 개구리까지 맛있게 잡아먹는 메기가 한 마리 있으면 주변의 생명체들이 아연 활기를 띠게 된다. 메기 한 마리가 잡아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생물들이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바삐 활동하고, 종족을 늘리기 위해 많은 번식을 하므로 조직 전체에 도움을 된다는 논리다.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창업주가 말했다고도 하고 이건희 전 회장이 강의한 내용이라고도 하는데, 어린 시절 동네 논에서 실제로 보았던 일을 경험론적으로 밝힌 것으로 보아 창업주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쫓기는 미꾸라지로선 스트레스로 죽을 맛이겠지만 인간 입장에선 주고받는 스트레스가 고맙기도 해 일부러 살아있는 메기를 논에 방류하기도 한다. 옛날 영국이 원양어업으로 날릴 때 청어를 잡으면 물메기(곰치)나 이면수(새치) 같은 놈을 한두 마리 함께 넣어 두었다 한다. 그러면 잡힌 청어들이 곰치와 새치를 피해 다니느라 어선이 북해에서 런던에 돌아올 때까지 살아 있다가 싱싱한 상태로 식탁에 올랐다.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은 대개 육식성으로 다른 생선들이 피해 다니는데, 가물치 새끼를 미꾸라지 통 속에 넣는 것도 같은 이치다.
■'넓은 논의 메기 한 마리'나 '청어 떼 가운데 곰치와 새치'라면 조직을 활성화 하는 견딜만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고기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록 지능지수(IQ)가 평균 10정도 된다는 물고기들이지만 반복적으로 줄기차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삶의 의욕은 물론 번식의 욕구까지 사라지게 된다. 수족관 운영자들이 많이 상담 받는 내용은 "아이들이 그렇게 즐겁게 해주는데 금붕어가 잘 죽는다"는 것이다. 어항을 톡톡 치며 함께 놀아주고, 바로 옆에서 '까꿍 까꿍'하며 기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10일 주변 도로공사로 어획량이 줄었다는 남한강 상류 어민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시공사 등에게 1,0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공사장 발파소음으로 고통을 겪는 주민에게 배상하라는 결정은 작년에도 있었지만, 야생 물고기의 스트레스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지하에서 발파하여 소음은 적더라도 그 진동이 물속에선 소리로 변하므로 물고기들이 '쇠약해지고 새끼도 잘못 낳는다'는 이유다. 섬세하고 사려 깊은 결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물고기만도 못하게 다뤄지는 우리의 처지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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