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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개정안 입법예고/ "해고대란은 경제 아닌 안보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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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개정안 입법예고/ "해고대란은 경제 아닌 안보문제"

입력
2009.03.1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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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사민정 합의 이후 모처럼 관계가 원만해진 노동계의 반발을 불사하고 비정규직법 개정에 나선 것은 당장의 고용대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당장 올해 춘투가 거세지겠지만, 정부로선 자칫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량 실업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실업자가 200만명을 넘으면 폭동과 소요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조치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라고까지 말했다.

● 고용불안, 얼마나 심각한가

2007년 7월 시행된 현행 법률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한 기업은 해당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시켜야 한다. 2년째가 되는 2009년 7월부터 2년 이상 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선택하는 기업보다는 고용기간 2년이 되기 전에 기간제 근로자를 해고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는 최악의 경우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90만명 가량이 해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7월 이후 6개월간 2년 기간이 만료되는 근로자는 약 100만명인데, 100인 미만 사업장의 90.1%가 '기존 근로자를 다른 근로자로 대체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응답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5월에는 해고하겠다는 응답이 61.3%에 불과했으나 경기 침체의 여파로 올해 1월에는 90%를 넘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사태의 급박성에 비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반응이다.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현행 법대로라면 해고밖에는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도 "정규직 노조의 경직성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해고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단기 효과만 있는 미봉책

노동부는 법안이 통과되면 2년 후에는 정규직 전환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장의 현안을 막기 위한 미봉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영희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근속기간 2년 근로자의 전환율은 13.6%이지만 4년 근속자의 전환율은 62.7%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사업주 부담 사회보험료 50% 지원대책도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 교수도 "근무기간이 3, 4년은 돼야 업무에 숙련된다"며 "기간 연장으로 전환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반론이 만만찮다. 당장의 실업대란은 막겠지만 장기적ㆍ긍정적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행 기간제 노동자의 근무직종과 손익을 따지는 기업생리상 기간 연장이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준우 한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저임ㆍ비숙련이기 때문"이라며 "4년으로 연장한다고 전환비율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봉 격차가 30% 이상인데, 연봉의 4% 내외인 사회보험금 지원책도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대 김 교수도 "정부는 전환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불안한 2009년 춘투

정부 공세에 노동계는 대규모 파업 가능성과 장관 퇴진운동 등 강력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재계 주도로 진행되는 대졸 초임자 임금삭감, 최저임금법 개정 등과 맞물려 올해 노사협상에서 큰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연대해 입법저지에 나서는 한편, 원외에서는 대규모 동조 파업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도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노동부 장관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 Q&A

- 주부, 학생 등이 할인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연장되나.

"그 동안 기간제 고용 조항을 피하기 위해 주부와 학생 등은 할인점이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주 15시간 미만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로 활성화 차원에서 기간 제한 없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주 20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은 어떤 지원을 받나.

"회사가 부담하는 4대 사회보험료(국민연금ㆍ의료보험ㆍ고용보험ㆍ산재보험)의 50%를 2년간 지원한다. 지원대상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도 포함된다. 모든 기업이 지원을 받을 수는 없고, 근로자 5인 이상~300인 미만 기업만 해당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정규직 전환 1인당 약 155만원(연봉대비 8.31%)이다. 2년간 3,46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22만명 가량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개별 근로자가 내는 보험료도 지원되나.

"그렇지 않다.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측 부담에 대해서만 지원된다."

- 2년 미만 근무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는 지원을 받을 수 없나.

"그렇다. 이번 기한 연장으로 정규직 전환이 늦춰진 2년 이상 근속 근로자를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근무기간이 2년 이상인 파견근로자를 전환해도 지원을 받는다.

또 재정지원을 노려 기간제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2008년 12월31일 현재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경우만 지원이 된다. 개정안이 7월부터 시행될 경우 2011년 6월말까지 전환하면 된다."

-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대책 강화방안은 뭔가.

"차별시정 신청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게 대표적이다. 지금은 차별 대우가 있었던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지방노동위원회에 신청해야 하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6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차별시정 조사과정에서 노동위원회 차원의 조사를 강화하고, 공인노무사를 무료 지원할 예정이다. 일선 노동관서에서 사업장 예방 지도점검 및 자율점검을 할 때 사업주에 개선을 촉구하는 행정 노력도 강화할 것이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 노동계 '격앙' 재계는 '환영'

정부 입법예고에 대해 노동계와 재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노동계는 정부 발표 즉시 맞대응 성명을 발표해 개정안 철회를 요구한 반면, 재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12일 성명에서 "경제위기 속에 고용불안으로 피가 마르는 비정규직의 요구는 외면한 채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묶어두는 개정안 입법을 강행했다"며 "이는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는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또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동안 정규직은 증가하고 비정규직은 감소했다"며 "법 개정이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이 아닌 비정규직 방치대책이자 확산 촉진 법안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 단체는 "4년이면 비정규직 채용과 교육연수 비용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 때문에 현재 정규직 전환 계획을 갖고 있던 기업조차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2년 이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에만 지원한다는 내용이어서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늘리는 역효과만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재계는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시급한데, 이번 기간제한 연장으로 대량 해고 사태를 피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현행 2년으로는 근로자의 업무 숙련이 기업이 원하는 수준까지 향상되기는 어려웠다"며 "4년으로 늘어날 경우 숙련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비율이 높아지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자총연합회 최재황 이사도 "정부 개정안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지만, 올 7월 계약이 만료되는 100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기한의 연장은 계약 갱신에 의지가 없는 근로자들에게 고용 연장의 기대를 줘 기업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 기한제한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공식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조철환기자ㆍ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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