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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4> 추락하는 공교육, 날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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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4> 추락하는 공교육, 날개는 없나

입력
2009.03.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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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Y군의 중학생 1,500여명은 3월부터 밤 9시가 돼야 집에 갈 수 있다. 지난해 10월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전국에서 바닥권 성적을 기록하자 관할 교육청이 이 지역 6개 중학교 교장들을 소집해 전 학년 야간자습을 시키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고교생들은 더 고달프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된 J고는 1, 2학년은 밤 9시40분, 3학년은 밤 11시까지 하교 금지다. 지난해만 해도 희망자에 한해 보충수업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강제사항이 됐다. '놀토(노는 토요일)'도 없다. 토요일에도 전 학년이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주말 부부인 교사들, 심한 경우 정규 수업 외 저녁에 4시간을 추가로 강의해야 하는 국어ㆍ영어ㆍ수학 교사들은 죽을 맛이다. "올해 대입에서 실적을 내야 우수학생 유치도 가능하고 입시 명문고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교장의 판단 때문"이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이 학교는 우수 학생 위주로 'SKY(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반' '심화반'으로 나눠 집중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 겨울방학 때는 2,000만원을 들여 사설 학원 강사를 초빙해 강의하기도 했다.

정부가 "사교육이 필요 없는 공교육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며 '사교육 없는 학교' 육성을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면서 전국 곳곳에서 Y군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학교가 영리목적의 사교육과 맞붙어 더 월등한 성적 향상의 성과를 내도록 '공교육과 사교육간 전쟁 상황'을 초래했다. 학교는 입시 위주로 기형화하고 있고, 학생과 교사들은 피폐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선택한 수단은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는 시간을 늘리는 것. 경기 안산의 C고는 근처 Y고가 지난 봄 방학 때도 전교생을 밤 10시까지 야간자습을 시키고, 인근 도시 S고가 일요일에도 3학년들을 학교에 나오게 하자 올해부터는 학년 불문하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얼른 밥 먹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학교는 1, 2학년은 밤 10시, 3학년은 11시30분까지 학교에 잡아둔다.

학교 담장 안으로 입시학원을 끌어들이는 '학교의 학원화'도 이미 보편화 했다. 경기 안성의 O고가 지난해 전 학년 대상 야간 보충수업을 영어, 수학 학원 강사들에게 맡기면서 지급한 강사료는 강사 1인 당 750만원(3시간씩 총 10회 강의). 시간 당 25만원으로, 이 학교 교사의 방과후 학교 수당(시간당 3만원)의 8배다. 학생들에게 과목 당 20만원씩 받고도 모자라 부족분은 학교에서 부담했다.

경기 의왕시의 M고 역시 지난해 국사, 물리, 언어 등 3과목을 하루 3시간씩 10일간 사교육 업체에 맡기면서 강사 1인 당 600만원을 지급했다. 사교육 없는 공교육을 만든다면서, 학교가 학원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주간에만 공교육일 뿐 야간에는 사설 학원인 셈이다.

경기지역 한 고교 교사는 "이렇게 한다고 학교 밖 사교육이 줄어드느냐, 천만의 말씀이다"면서 "밤 10시 야간자습이 끝나면 교문 앞에 학생들 태우러 온 학원 차들이 늘어서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전남 나주의 고등학생 학부모 김모(47)씨는 "이 곳은 학원이 거의 없어 평일에는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해도, 주말이면 고교생들이 장성의 기숙학원에서 1박2일 공부하고 오거나 주말 내내 광주의 학원에서 보낸다"고 말했다.

공교육이 성적 올리기에 올인하는 현상은 중학교, 초등학교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학생(전체의 36.8%) 가운데 특기적성 참가는 30.8%인 반면 영어, 수학 등 교과 보충수업 수강은 69.2%(중복 수강자 반영 안함)에 달했다. 초등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은 2007년만 해도 교과 보충이 전혀 없었지만, 지난해 3.1%로 늘어났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강제 보충수업 때문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북구 S초교 4학년 김모(11)군은 성적이 기초수준이 안된다는 이유로 오후 5시까지 학교에 남아 수업을 받으면서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게 됐다. 예전에는 동네 공부방에서 공부하며 저녁도 해결했는데, 하교가 늦어지는 바람에 불가능해졌다. 식당 일 하는 엄마는 밤 늦게나 퇴근한다.

물론 "학교에서라도 다잡아 애들 공부시켜주었으면…" 하는 학부모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학원이 없는 지역일수록, 있어도 보낼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일수록 그럼 바람은 더하다. 그러나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목적이 서로 다른 공교육을 사교육과 경쟁시키는 정부의 문제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이렇게 한다고 사교육이 줄지?않을 뿐더러, 공교육은 결국 피폐화하면서 학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도 "공교육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공공의 목표에 충실해야 하고, 사교육 줄이기는 대학 입시제도 개선과 같은 제도 개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김혜경기자

■ '방과 후 학교' 공교육 모델론 무리…특기·적성-교과 보충 오락가락

이명박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방과후 학교'에 큰 기대를 거는 눈치다. 그러나 방과후 학교를 획기적인 공교육 모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 예ㆍ체능 교육, 보충수업 등 정규 교육 외에 학교 안에서 이뤄지던 각종 교육활동을 한데 아우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방과후 활동이 학교에 첫 등장한 것은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ㆍ31 교육개혁안을 통해서다. 당시 교육개혁위원회는 "학생들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방과후 교육을 제안했다. 학교 실정과 지역 특성에 맞게 영어회화, 컴퓨터, 글짓기, 예ㆍ체능 등 특별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중ㆍ고교의 경우 국어, 영어, 수학의 보충강좌 개설을 허용했다.

하지만 특기ㆍ적성 교육은 인기를 끌지 못했고, 교과목 프로그램은 입시 목적의 보충수업으로 전락했다.

특기ㆍ적성과 교과 보충 사이를 오가던 방과후 교육은 2004년 2ㆍ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통해 '방과후 학교'로 자리를 잡게 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사교육과 경쟁이 가능하도록 학교 내 과외를 허용하라"고 지시했다. 방과후 학교는 모든 교육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이 때부터 수준별 보충수업 등 교과 비중이 대폭 확대되고, 참여율도 크게 높아졌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비 절감의 구심점으로 부각되면서 무게 중심이 학력 신장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김이삭 기자

■ '사교육 없는 학교'가 모델?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8일 '2008 사교육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교육 없는 학교'를 새로운 공교육 모델로 내놓았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되면 학교장이 교육 과정이나 학사 운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방과후 학교를 통해 유명 학원과 연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또 이 학교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치를 때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가산점이 주어진다.

교육환경 개선과 프로그램 운영에 드는 돈은 모두 교육 당국이 부담한다. 학교 당 평균 지원금만 2억원에 달한다. 교과부는 올해 우선 300개 학교를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하고 2012년까지 전국 초ㆍ중ㆍ고 1,000곳을 운영한다는 청사진도 마련했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교육청도 5일 사교육 없는 학교 32곳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시범 운영기간(3년) 동안 학교 당 4억원을 지원해 사교육비를 현재 수준의 80%까지 줄이는 것이 목표다.

열악한 공교육 현실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일정 부분 사교육비 감소 효과도 예상된다. 그러나 '사교육 감소=공교육 정상화'라는 정부 논리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해프닝으로 막 내린 '임실의 기적',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꿈꾸는 교육현장"이라고 극찬한 서울 덕성여중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임실 초등학교들은 아이들을 오후 6시까지 공부시켰다. 덕성여중도 학생들을 밤 10시까지 남겨 수준별 보충 심화학습을 해왔다. 교과부가 밝힌대로 "학생의 잠재력을 키워주겠다"는 것이 사교육 없는 학교의 도입 취지라면, 거리가 먼 교육 방식이다.

실제 학교 현장의 현실을 보면, 사교육 없는 학교가 '학교의 학원화'를 가속화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송인수 사교육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정작 사교육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서열구조는 내버려둔 채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잡아놓고 입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교육의 질을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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