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현 상태 수용불가'를 밝힌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의 발언을 비롯해 미국 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론이 확산되는 데 대한 여야의 처방은 엇갈렸다. 비준안 동의권을 가진 의회가 협상 당사자인 양 국가의 게임 속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선제적 비준' 입장을 고수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한미FTA는 미국 의회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처리할 것"이라며 "국회가 FTA비준 문제를 미국의 상황을 지켜 봐가면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자주국가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즉 예정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의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먼저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국회 외통위 소속인 윤상현 의원은 "한국 의회가 비준안을 먼저 통과시키면 미국도 재협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야권에서 제기되는 '선 비준 후 재협상'이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비준안은 그대로 둔 채 한미FTA 이행법률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수용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선 비준을 하면 미국의 요구를 재협상에 못 미치는 추가협상 수준으로 낮추는 효과도 얻는다는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은 한미FTA 내용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한나라당 시각에 근거한 것이다.
반면 야권은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한 만큼 4월 중 한미FTA 비준안 처리 강행 계획을 철회하고, 미국 상황을 보면서 전략적으로 판단하자는 주장을 거듭 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한미FTA를 조기비준해 문제를 신속하게 풀 수 있다는 이 정권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제라도 또다시 국회에서 비준안을 강행처리하려는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정부 여당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초근시증 환자 같다"며 "한미FTA는 해야 하지만 국익을 손상하면서까지 서둘러선 안 되며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한국 쪽에서 미흡한 부분도 다시(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선 비준을 통한 미국 압박'이란 여당 구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민주당 외통위 간사인 문학진 의원은 "선 비준과 무관하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미국은 파나마와 콜롬비아가 선 비준한 FTA안을 사실상 파기하고 재협상을 관철시킨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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