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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2009년판 五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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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2009년판 五賊'

입력
2009.03.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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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예가 바로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 장성,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가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기는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불알만 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에 이르렀것다.'

시인 김지하(68ㆍ사진)씨가 '2009 오적(五賊)'을 발표했다. 김씨는 11일 출간된 계간문예지 '자음과 모음' 봄호에 1970년 발표했던 자신의 시 '오적'을 싣고, 그 내용을 소재로 한 그림 15컷을 새로 그려 발표했다.

'오적'은 김씨가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발표했던 시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특권층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빗대 풍자한 담시(譚詩)이다.

김씨는 그들을 다섯 도둑으로 규정하고,그 각각에 개 견(犬) 부가 들어가는 한자를 써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개 같은 오적이 도둑질 시합을 벌인다는 것이 시의 내용이다. '오적' 발표 직후인 그 해 6월 구속된 김씨는 1970년대 저항시인의 대명사가 됐다.

'2009 오적'은 시의 내용을 형상화한 익살스런 그림들과 함께 실렸고 각 그림에는 '소해 설날 지하 그림'이라는 서명이 붙어있다. 김씨는 '2009 오적'이란 시 제목 밑에는 원고지를 앞에 두고 한 손에는 펜을,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뒤 '똑 좀비처럼! 한 거지시인이'라는 글을 적어넣었다.

김씨는 "요즘은'오적' 이 아니라 '오백적', '오천적'이 있는 시대"라며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가한 젊은이들을 보고, 그들 사이에 풍자적 감각이 유행하는 것 같아 '오적'에 코믹한 삽화를 그려넣어 다시 발표할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촛불세대의 감각을 살린 풍자시집도 내년께 출간할 예정이다.

'자음과 모음' 봄호에는 '오적' 의 절반 정도의 분량이 수록됐으며, 5월 중순 나올 '자음과 모음' 여름호에는 포도대장과 오적이 벼락을 맞아 죽는 장면 등을 담은 그림 10편 정도가 더 추가돼 '오적'의 나머지 부분이 모두 수록돼 나올 예정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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