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8시 250석 규모의 신촌 더스테이지 극장.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불이 들어오자 그저 평범한 소극장 공연이라 하기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부 관객은 필기도구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몇몇은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다.
더욱이 잠시 후 무대에 등장한 이들은 배우가 아닌 제작 스태프들. 정확히는 2007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 '쓰릴 미'의 원작자 스티븐 돌기노프(41)와 창작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의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27)이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작품에 담긴 음악을 직접 연주하면서 뮤지컬 음악의 특징과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특별 강연 현장의 모습이다.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기 원하는 관객을 겨냥, 공연제작사 뮤지컬해븐이 '뮤지컬 창작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마련한 행사이다. 뮤지컬 팬의 깊은 관심이 무대 뒤 사람들을 무대 위로 불러들인 셈이다.
먼저 강연에 나선 이는 스티븐 돌기노프. '쓰릴 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살인, 유괴, 동성애 등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충격적 소재를 담고 있으면서도, 뜻밖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뮤지컬이다.
7일 개막한 한국 공연에 맞춰 내한한 그는 "1994년 책에서 접한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6주 만에 쓴 작품"이라고 작품 구상 배경을 밝혔다.
그는 또 "비도덕적인 소재 때문인지 2005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이 작품을 처음 올리기까지 10년이나 기다려야 했다"며 브로드웨이의 치열한 경쟁 상황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윌 애런슨은 작곡가답게 뮤지컬 음악에 좀 더 집중했다. 6일부터 초연 무대를 갖고 있는 창작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은 신선한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음악만 따로 놓고 보면 경쾌하지만 여기에 드라마와 연출, 조명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게 뮤지컬 음악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말했다.
20~30대 여성들이 위주인 200여명의 관객은 각 30분씩의 두 사람의 강연이 끝난 후에도 1시간여나 질문 공세를 이어가는 등 인기 뮤지컬 공연 현장 못지않은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그건 강연에 나선 창작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기는 마찬가지. 돌기노프는 "미국에서도 강연 경험은 있지만 강연과 공연이 함께 있는 이런 이벤트는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면서 "주 관객층이 60대 이상인 미국과 달리 이처럼 원작자에게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적극적인 젊은 관객이 있는 만큼 한국 뮤지컬의 미래는 밝아보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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