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늦어도 아홉시까지는 귀가하리라는 아이와의 약속을 깨고 이차, 삼차 시간을 질질 끈 것은 순전히 두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천이백여 년 전에 태어난 한 늙은 남자 때문이었다. 왜 깔끔하게 일차에서 못 일어서느냐고, 새벽녘 겨우겨우 집을 찾아온 남편에게 큰소리치던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그날 자리에서 한 선배가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를 읊지 않았더라면 밥만 먹고 일어섰을 것이다.
며칠 전 비가 내리던 봄밤, 불쑥 그 시가 떠올랐다고 했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됴한 비 시절을 아니,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니. 그의 입에서 나온 언해를 그대로 옮겨적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언문은 아름다웠다. 20여 년 전에 읽었을 시를 달달 외우고 있는 그가 신기해 몇 구절 따라 읊었다. 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 야경운구흑(野徑雲俱黑), 들길과 하늘의 구름 모두 어두운데… 시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있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공교육의 희망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전공도 아닌 문학에의 향수를 마흔 넘도록 가지게 한 그의 고등학교 은사님이 만나고 싶어졌다. 봄밤이었다. 도로도 하늘도 모두 어두운, 그야말로 야경운구흑이었다. 수풍잠입야하듯 살금살금 문을 열고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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