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1)씨의 중국 밀항 과정(본보 11일자 10면 보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혹 투성이다.
우선 태안해양경찰서가 지난해 11월 초 조씨의 밀항을 도운 박창희(42)씨로부터 조씨의 밀항 시도 사실을 처음 제보받은 뒤 12월 9일 조씨가 밀항하는 순간까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인근 서산경찰서가 11월 4일 조씨 일당의 공개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태안해경은 그 전단을 한 달도 더 지난 12월 11일에야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서산경찰서 관계자는 "공개 수배전단은 내부 경찰 전산망을 통해 각 지방청에 전달했지만, 해경 쪽은 소속이 달라 늦게 보냈다"고 해명했다. 조씨가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컸지만, 경찰은 조씨의 밀항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개 수배전단이 늦게 전달됐다 하더라도, 조씨는 이미 11월 초부터 경찰과 해경이 공유하는 수배자 전산망에 등록돼 있었다. 수배자 전산망에 얼굴이 나오지는 않지만, 해경이 조씨를 불심검문만 했더라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안해경은 조씨가 11월초부터 밀항 전까지 세 차례나 태안에 나타났지만,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조씨가 밀항 당시 보인 태도도 의문이다. 제보자 박씨는 "조씨가 11월 30일 두 번째 밀항 시도 때부터는 1차 때와 달리, 변장도 하지 않고 태안 앞바다를 태연히 활보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대구경찰청이 11월 20일께 조씨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며 전국에 공개수배했지만, 조씨는 거꾸로 태안에서 더 대담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조씨 사기 피해자 모임측이 해경의 부실수사에 대한 비난을 넘어 "밀항 도우미"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시 박씨의 제보와 공조를 받고도 범인 검거에 실패한 해경 관계자들은 최근 인사에서 해양경찰청 본청으로 사실상 영전했다. 본보는 이들 해경 관계자들에게 수 차례 해명을 요청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변을 회피했다.
검찰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씨 사건을 수사한 서산지청은 수사과정에서 박씨의 역할을 알고 체포 사흘 뒤 풀어주기로 했다가 태도를 돌변해 박씨를 기소했다는 것이 박씨 주장이다. 본보가 입수한 전화통화 녹취록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일부 나타나 있다.
박씨는 태안해경 한모 계장과의 통화에서 "형님(한 계장)한테 검사가 약속했어요. 자, 법의 절차가 있으니까 3일만 기다려주시오, 이야기했어요, 안했어요?" 라고 하자, 한 계장은 "이야기 했지" 라고 대답했다.
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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