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지난 1월 발굴된 백제 무왕 당시(639년)의 사리장엄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금제 사리호를 비롯한 국보급 유물의 무더기 출토도 놀라웠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선화공주에 대한 것이었다.
사리 봉안기(奉安記)에 적힌 무왕의 왕비는 익히 알려진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관리인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1,400여년 동안 전해져온 선화공주가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고, 미륵사의 건립 주체를 무왕과 선화공주라고 기록한 <삼국유사> 역시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삼국유사>
과연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서동 설화는 그냥 설화에 불과한 것일까.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발굴 두 달 후 열리는 학술대회는 이 문제도 조명한다. 한국사상사학회(회장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익산 미륵사지와 백제 불교'를 주제로 14일 서강대에서 여는 정기 학술대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서동설화와 관련, 사택 왕후는 미륵사의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을 발원했으며, 미륵사의 중원(中院)은 무왕과 선화공주가 만들었다는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미륵사는 중원과 동원, 서원의 세 사찰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삼원병립식(三院竝立式) 가람으로, 이번에 발굴된 사리장엄구는 서원에 포함된 서탑(西塔)의 것이다. 조경철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백제 익산 미륵사 창건의 신앙적 배경 - 미륵과 법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한다.
조 박사가 미륵사 중원과 동ㆍ서원의 건립 주체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미륵사 창건의 신앙적 배경에 있다. 미륵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불교의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국유사> 에 따르면 무왕이 왕비가 된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중 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난 것을 보았고, '이 곳에 절을 세워달라'는 왕비의 청에 따라 미륵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륵을 받드는 미륵사의 서탑에서 발견된 봉안기에는 미륵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삼국유사>
조 박사는 "사택 왕후는 미륵신앙이 아닌 법화신앙과 밀접한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택 왕후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택 가문의 대표적 인물로, 사택지적비를 남기기도 한 사택지적(砂宅智積)의 경우 '법화경'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을 만큼 법화신앙과 깊이 연관돼있다.
미륵신앙과 법화신앙은 백제 불교의 두 줄기로, 미륵신앙은 석가모니 다음의 부처인 미륵불을 숭상하는 것이며, 법화신앙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 사상으로 하는 '법화경'의 내용을 신봉하는 것이다.
조 박사는 "법화신앙을 가진 사택 왕후가 미륵을 본존으로 하는 미륵사 전체를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서로 대칭을 이루는 동원과 서원을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륵사 중원의 창건 주체는 미륵신앙을 가진 무왕과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노중국 계명대 교수도 미륵사 중원터에서 기축년(629년) 도장이 찍힌 기와가 출토된 것을 근거로 중원이 먼저 만들어지고, 동원과 서원은 이후에 완성됐을 가능성을 제기(본보 1월 21일자 보도)한 바 있다.
조 박사는 "미륵사의 삼원식 가람 배치는 미륵신앙과 법화신앙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면서 "무왕은 미륵사 창건으로 자신을 미륵으로 자처함과 동시에 대표적인 귀족 가문인 사택씨의 법화신앙을 받아들여 불교 신앙의 통합과 조화, 나아가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미륵사 사리장엄구 발굴 성과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첫번째 자리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문화재청의 의뢰로 사리봉안기를 판독한 김상현 한양대 교수, 길기태 국가기록원 박사 등도 논문을 발표한다.
21일에는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가 미륵사를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하며, 4월에는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와 백제학회(회장 양기석)가 공동으로 대규모 학술대회를 여는 등 미륵사 사리장엄구 발굴은 학계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 유물의 일반 공개도 추진되고 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0일 "9월에 개최하는 '박물관 100주년 특별전'에 미륵사지 석탑 출토 유물 등 최근 발굴된 후 미공개 상태인 유물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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