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휴대용 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를 켜면 자동으로 영어 단어 암기 프로그램이 작동된다. 영어 단어는 발음과 함께 2초 동안 깜빡인다. 이후 1초 동안 한글로 단어의 뜻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영어 단어가 나타난다.
한 번 나타난 단어는 기계를 새로 켜기 전까지 되풀이되지 않는다. 이용자는 마치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처럼 흘러가는 단어를 지켜보면 된다. 과연 이렇게 해서 영어 단어를 외울 수 있을까.
10일 만난 임형택(39ㆍ사진) 원샷보카 사장은 '암기는 친숙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명 '깜빡이'로 통하는 '보카 마스터'라는 영어 단어 학습기를 만들었다. 임 씨 혼자서 제품 개발부터 판매, 기획까지 다하는 '1인 기업'인 원샷보카는 이 제품으로만 지난해 무려 200억원을 벌었다.
'깜빡이'의 원리는 사람의 기억 방법과 관련 있다. "유학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암기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결과 사람은 눈으로 한 번 보면 컴퓨터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이를 쉽게 찾지 못할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됐죠. 여러 번 반복해 보거나 들어서 친숙해지면 쉽게 기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임 씨는 이런 방식으로 직접 실험을 했고 효과에 대한 확신이 서자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유학도 접은 채 직장 생활을 하며 제품 개발에 착수, 마침내 1997년 말 '깜빡이'의 첫 번째 버전을 탄생시켰다. 무선호출기(삐삐)에 프로그램을 내장해 단어를 보여주는 방식. 그러나 만들기만 했을 뿐 파는 방법을 몰라, 판매엔 실패하고 말았다.
2002년 두 번째 버전이 나왔지만 역시 판매가 저조했다. 그가 빛을 본 것은 2006년 11월 게임파크홀딩스에 생산을 의뢰해 내놓은 세 번째 버전이었다. 과거 버전과 달리 음성으로 발음도 들을 수 있었다. 우연히 시도한 신문 광고 덕분에 인터넷 쇼핑몰, TV 홈쇼핑에도 소개되며 판매는 날개를 달았다. 임 씨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1만개 이상 팔리며 지난해 매출 실적이 200억원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임 씨는 사장인 동시에 사원이다. 연구개발자인 동시에 판매원이기도 하다. '멀티플레이어'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어려움도 많았을 터. 하지만 임 씨는 1인 기업의 고충 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했다.
"몸집이 가벼운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생산비 등 일체 경비가 들지 않았고 제품개발에서 판매까지 누구의 간섭도 없었지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결국은 장점을 터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그의 휴대폰은 움직이는 사무실이 됐고 인터넷은 고객센터가 됐다.
올해 임 씨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영어 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등 다국어 버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요즘 중국을 오가며 수출 상담도 직접 한다. 그는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1.5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요즘 경제가 어렵지만 그럴 때 일수록 자신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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