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우리의 심안을 열리게 한다. 살아 계실 때 추기경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혜화동에 있는 주교관을 찾아가야 한다. 추기경님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 약속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죽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보고 싶으면 우리는 언제든 마음속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분도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다. 그것이 죽음의 신비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지난해 침샘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소설가 최인호(64ㆍ사진)씨가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은 글을 발표했다.
최씨는 10일 출간되는 월간 '샘터' 4월호에 게재한 연작소설 '가족'의 제396회 연재분 '천상의 점심식사'에서 추기경과의 인연과 선종 이후의 슬픔, 사무치는 그리움 등을 털어놓았다.
추기경과는 생전에 대여섯 번 만난 것이 고작이라는 최씨는 그러나 선종 소식을 듣고 "평범한 인연인데도 일주일 내내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다.
최씨는 지난해 7월 암 치료를 위해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추기경과 같은 병동에 있는 사실을 알았지만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얘기를 듣고 끝내 문병을 가지 못했던 일도 떠올렸다.
그는 "그러나 추기경님이 같은 병동에서 누워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불면의 밤이면 그 분께서도 불면의 고통으로 뒤척이고 계시다는 생각에 얼마나 용기를 얻었던지"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최씨는 또 선종 이틀 후 꿈 속에서 추기경을 만난 체험도 고백했다. 그는 "어디선가 따뜻한 손이 나타나 내가 수술받은 왼쪽 얼굴을 정확히 두 번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나는 그 손길이 추기경님의 것임을 확신하였다"고 썼다.
서재 앞에 추기경의 초상을 걸었다는 최씨는 추기경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천상의 식탁에서 그분과 함께 미뤘던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침샘암 수술을 받느라 30여년간 빠짐없이 '샘터'에 연재해온 '가족'의 집필을 중단했던 최씨는, 연재 중단 7개월 만인 지난달 집필을 재개했다. 서울 자택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가족을 주제로 한 산문, 꽁트 모음집을 5월 출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