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재판을 비롯한 시국사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의 행위들이 재판 개입인지, 정당한 사법행정의 일환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관행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데에는 법관들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그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이번 파문이 불거진 이후 관련자들이 언론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선 신 대법관이 지난해 대법관 임명제청을 목전에 두고 서울중앙지법의 민감한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관리'하려 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메일을 집중적으로 보낸 지난해 10~11월 무렵, 그는 '대법관 도전 4수생'이었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시절인 2006년 6월에 대법관 하마평에 처음 올랐다. 이어 대법관 정원이 1명 늘어난 지난해 2월에도 후보로 거론됐으나 낙점을 받지 못했다.
촛불집회 배당 파문(7월 14일) 직후인 지난해 8월 초,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자리가 공석이 됐을 때마저 쓴 잔을 마셔야 했다. 결국 고현철 대법관이 퇴임하는 올해 2월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고, 이를 의식한 신 대법관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재판에 대해 집중 관리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당시 형사단독 재판부를 맡고 있던 한 판사는 "소신이 꺾였다"는 말로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내부의 민감했던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 말은 법원장이 의도를 갖고 수개월에 걸쳐 사건 처리 방향을 한결같이 종용하는 분위기에서 일선 판사들이 느꼈을 중압감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신 대법관의 행동은 당시 대법원에서 서울중앙지법의 상황을 예의 주시했을 정도로 법원 내부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사건배당 논란이 불거진 단계에서 이미 관련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신 대법관의 행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며 "법원행정처 차원에서도 신 대법관의 행동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그 역시 신 대법관의 일련의 행위를 "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 대법원장은 왜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올 초 그를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당시 이 대법원장이 법원 내부 분위기를 엄중하게 인식하지 못해 대외적으로 '무난한 인사'를 선택한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상황을 오판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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