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인 자신 말고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삶과 마음, 그가 선택한 시어들의 상징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소설가 김훈조차 수필집 <바다의 기별> 의 '시간의 무늬'에서 "시를 쓰지 못하며,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마음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시적 대상이나 정황이 시행으로 바뀌는 언어의 작동방식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며, 그래서 시를 읽을 때 내 마음은 시행을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 너머의 시적 실체 사이에서 표류한다"는 것이다. 시의 막막함이란 이런 것이다. 바다의>
▦기형도(1960~1989)의 시어들은 빈 집과 가지와 들판, 겨울, 눈과 비바람, 황혼, 안개, 눈물들이다.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이나 미발표 시들, 심지어 산문에까지 이어지는 이 쓸쓸하고 어두운 언어들의 실체는 아마 외로움과 고통, 희망에 대한 체념, 배반 당한 순수, 잃어버린 사랑, 시대의 절망일 것이다. 그래서 그와 그의 시들은 겨울의 어두운 밤 거리를 헤맸다. 추억은 쉴 곳을 잃었고, 가엾은 사랑은 '빈 집'에 갇혔다. 그리고 시인은 어릴 때 엄마를 기다리며 그랬듯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렸다. 입>
▦심성이 고운 젊은 시인에게는 삶과 세상의 모든 것, 욕망과 그리움조차 권태로웠다. 그는 기적을 믿지 않았고(시 '오래된 서적'), 인생을 증오하기까지(시 '장밋빛 인생') 했다. '미안하지만 이제는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다짐했지만 그가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시에게조차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할 만큼 공허와 권태에 사로잡혔다. '철저히 파멸하고 망가져 버리는 상태에까지 가고 싶었던'(산문 '짧은 여행의 기록') 그는 '언제 너(죽음)를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던가'(시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2')라며 어느날 갑자기 어둠 속에 갇힌 큰 방(심야극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그렇게 세상을 뜨자, 누구는 '예감의 시인'이라고 했고, 누구는 그의 시를 '죽음의 이미지들'이라고 했고, 누구는 반대로 "아니다. 그의 시는 육체의 죽음을 견디는 강렬한 내구력"이라고 했다. 시란 이렇게 정확한 실체를 모른 채 각자의 언어와 가슴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7일은 기형도의 20주기여서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렸고, KBS 1TV <낭독의 발견> 도 13일에 '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를 읽다'를 준비했다. 죽음 때문이 아니라, 감수성 있는 그의 시어들이 상징하는 '실체'들이 지금도 우리에게 의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낭독의>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