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인구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네덜란드의 저명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구이다. 갑자기 닥쳐온 글로벌 경제위기- 이 암울한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떤 희망의 나무를 심어야 할까?
지난 주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일본에게 치욕적인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지난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야구 금메달의 감동이 아직 남아 있던 터라 이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과 국민의 충격은 매우 컸다.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야구 경기의 경우 일본에 설욕을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대회의 복잡한 경기방식으로 일본과의 재대결도 가능하고, 일본과는 수준 차이가 적어 언제나 서로 승패를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
한편 지난 가을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노벨과학대전에서도 13대 0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맛본 경험이 있다. 작년 한꺼번에 3명이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던 일본의 노벨잔치를 우리는 부러움 속에 지켜보았었다. 문제는 이 기초과학 역량의 열세를 조만간 극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거이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쓰카와 도시히데의 지적처럼 "노벨상 수상은 국력과 사회적 역량의 총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역량은 일본에 비하면 아직 아마야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노벨강국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력을 더욱 강화하고자 국가적인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11월 일본은 발 빠르게 문부과학성 장관 주재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 10명과의 간담회를 두 차례 가졌다. 모임 참석자들은 "기초연구가 '새로운 지식 창출'과 '창조적 인력 양성'을 통해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과학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일본 정부는 즉각 '기초과학력강화 추진본부'를 설치하고, 기초과학력 강화를 위한 국가 시스템 구축과 관련 시책의 조정기능의 강화에 나섰다. 특히 초ㆍ중등학생들의 이공계 기피를 막고 기초과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2009년을 '기초과학력 강화의 해'로 지정하는 한편, '기초과학력 강화 종합전략'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전통적인 노벨대국인 영국과 독일을 추월할 때까지는 '아직도 배가 고픈'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쓰라린 가을의 추억이 매번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노벨상과 기초과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시즌에만 반짝하고 지나가곤 만다. 정부의 관련 대책도 일회성 또는 단기 대책에 그치고, 멀리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중ㆍ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마인드가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가을의 전설을 만들려면, 일본과 같이 국가적 차원에서 기초과학력 강화를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추진,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기초과학은 해마다 초대 받지 못한 노벨잔치로의 지름길이자 미래도약을 위한 핵심엔진이다. 기초과학력 강화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그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지, 언제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한 이 중요한 미션에 소홀할 수 없다.
노벨의 계절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지금부터 기초과학력 강화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과감한 액션을 취해나가자. 호미와 삽을 들고 '노벨강국 코리아'를 향한 희망의 씨앗을 심자.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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