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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전' 거부할 수 없는… 언어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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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전' 거부할 수 없는… 언어의 마력

입력
2009.03.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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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압력성 이메일 파문을 계기로 '친전(親展) 문화'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친전이란 '문서를 받는 사람이 직접 펴보라'는 뜻으로 신 대법관은 이메일 서두에 대외비와 함께 친전을 표시, 보안을 당부했다.

법조계보다 더 친전이 많이 쓰이는 곳은 정치권. '직접 펴보라'는 단어의 뜻처럼, 과거 정치권에서는 친전은 내밀한 정보나 지시 등 음습한 뉘앙스로 통했다. 유신 정권은 물론이고 문민정부 시절에도 정보기관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로 실세였던 현철씨에게 주요 정보를 담은 친전을 보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국가정보원장들이 주요 인사들의 통화내용을 담은 A4용지 반쪽 크기의 친전 보고서를 실무진들로부터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이메일이 보편화된 현재도 정치권에서는 친전이라고 적힌 밀봉된 노란색 서류봉투가 여전히 건네지고 있다. 의원마다 편차는 있지만 하루 평균 1,2건을 받는다고 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친전은 비공식적으로 건네지고 일각에서는 내밀한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음습한 용도로는 쓰이는 친전은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의원들이 주고받는 친전은 크게 민원, 법안협조, 모임 등 3가지다.

그 중 민원이 친전의 다수를 차지한다. 지역구 예산확보부터 공무원 인사,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소명 등 민감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런 친전은 상임위원장이나 정조위원장 등 영향력 있는 의원에게 전화로 1차 설명을 한 뒤 이력서 등 관련 자료를 보내는 방식이다. 여전히 친전의 부정적 유산이 남아 있는 셈이다.

법안협조 친전도 적지 않다. 의원들은 친전을 통해 소속 상임위나 법사위 의원들에게 자신이 발의하는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의원 연구모임이나 토론회, 공청회 등에 참가해달라고 요청하는 친전도 있다.

이처럼 친전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친전의 묘한 힘 때문이다. 친전은 동료 의원들에게 예의를 다한다는 느낌을 주고 무언의 압력으로도 작용한다. 모임 행사를 '알림장' 형태로 팩스를 통해 보내거나 유선상으로만 민원을 부탁하면 성사되기가 어렵지만 친전으로 보내면 문서의 격(格)도 높아지고 민원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친전을 받으면 일단 상대가 나를 예우한다는 생각이 들어 단순한 모임이라 할지라도 가급적 참석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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