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법관 중도 사퇴가 현실화할 것인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재촉 이메일 파문이 당사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6명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지만,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가 봉합 될 것 같지는 않다.
책임 추궁 불가피할 듯
신 대법관은 6일 "법에 따라 신속한 재판을 당부한 것뿐"이라며 이메일을 보낸 것이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도 분명히 했다. 신 대법관을 비롯해 사건 연루 의혹이 나오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 등 당사자들도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진정되기를 바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의 이메일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상,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사태가 일단락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판사는 자신이 심리하고 있는 사건과 관련한 법률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이 들어가면, 그대로 재판을 진행해 판결을 내려도 되지만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판결을 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권리 또한 가지고 있다. 신 대법관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건만 재판이 정지되고, 나머지 사건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며 재판 재촉이 문제 될 것 없다고 주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명백히 '헌재 결정을 기다릴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대법관 출신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재판 진행에 관해 사법 감독관인 원장(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원장의 이메일에 '통상적인 절차'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하는 절차를 취하지 말고 형사재판으로 끝내라는 취지라면 법관의 재판 내용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신 대법관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103조를 위반했고, 인사청문회에서 위증해 국회법을 위반한 것은 헌법 65조에 정한 탄핵사유"라며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탄핵 소추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상조사 한계
대법원은 조사를 빨리 진행해 이르면 다음 주중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야법조계 등이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6명의 조사단 소속 판사들이 신 대법관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을 비롯, 신 대법관과 이 대법원장 등을 만나 조사할 예정이지만 사실관계와 압력 여부를 얼마나 제대로 밝혀낼지는 미지수다.
신 대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복구해 분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물증 확보 없이 주로 판사들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메일이 언론에 공개된 과정도 조사 내용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내부고발자 색출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조사결과에 담을 내용도 골칫거리다. 대법원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이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인지 아닌지 유권해석을 내려야 하는데,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은 낮다. "문제가 없다"고 발표할 경우 일선 판사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고, "재판 침해"라고 발표할 경우 신 대법관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메일 파문의 회오리는 다음 주 조사발표를 기점으로 최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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