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야코보니 지음ㆍ김미선 옮김/갤리온 발행ㆍ306쪽ㆍ1만3,000원
영화 속의 '터미네이터'가 첫 키스의 순간을 맞았다고 치자. 이 섬세한 행동에 앞서 터미네이터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미묘한 '연산'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선 오늘따라 미간을 모은 채 뭔가 골똘한 표정을 짓곤 하는 연인의 속내는 뭘까, 또 밤하늘의 별밭을 가리키며 달뜬 목소리로 탄성을 지르다가는 뜬금없이 토해내는 저 짧은 한숨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입술에서 부드러운 밤공기를 타고 전해오는 이 코코넛 향기의 정체는 대체 뭔가….
힘겨운 연산 끝에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이 발산하는 신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드디어 '그 때'가 왔군요. 자, 키스합시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연인의 마음은 십중팔구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다.
인간은 절대 이러지 않는다. 척 보면 알고, 느끼고, 즉각적으로 감응한다. 어떻게 초 당 수 천억 번의 연산능력을 갖춘 미래의 인공지능급 컴퓨터조차 따라오지 못할 '기적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가능할까. <미러링 피플> 은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뇌 속의 '거울뉴런(mirror neurons)'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미러링>
거울뉴런은 뇌의 전운동피질과 하두정피질에 있는 작은 신경세포 회로. 우리가 미소를 짓거나 손으로 컵을 쥐거나 하는 행동을 직접 할 때도 활성화되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것을 볼 때도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세포들이다. 즉 타인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이심전심 뉴런' 또는 '공감의 뇌세포'인 셈이다.
책은 이탈리아 파르마대학의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가 착수한 뒤 1990년대 중반 저자인 마르코 야코보니에 이르러 개화한 거울뉴런의 발견과정과 관련 실험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축으로 한다.
인간의 감정이입과 공감의 메커니즘에 분석과 판단이라는 사고작용 외에 거울뉴런의 자동적인 생리작용이 개입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 대한 전통적 연구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인간이 후천적으로 사회화된다는 통설 대신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가 '나'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은 '자아'와 '타자'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도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또 거울뉴런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기제로 대두되면서 모방폭력, 신경 마케팅과 광고, 모방과 학습, 자폐증 치료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응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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