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도 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수 국민은 크고 작은 고통에 시달린다. 경제적 고통은 물처럼 아래로 흘러서 고여 중산층 이하 계층의 어려움을 크게 하고 있다. 특히 생활보호 대상자 바로 위에 자리잡아 공공부조를 합치면 오히려 최하위 계층이 되는 '차상위 계층'은 생존 위협을 느낄 정도다. 그나마 이들에게 쿠폰이나 현금을 제공하는 방안이 매듭단계에 이르렀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가려진 극빈층인 외국인 근로자들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려는 구체적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들에 대한 극악하고 각박한 처사만 잇따라 분노와 부끄러움을 자아낸다.
한국일보 보도(6일자 10면)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급여에서 다달이 고용보험료를 떼고도 실제로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악덕기업이 적잖고, 이 때문에 이들이 해고될 경우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고용주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해도 실직 후 2개월 안에 취업해야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실업급여 되찾기'보다 일자리 찾기가 급한 형편이니 더욱 딱하다.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귀국비용보험이나 출국만기보험을 외국인 근로자에게 떠넘기는 사례도 허다하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를 속여 임금을 착취한 악덕 기업주도 문제지만, 이런 악덕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의무가입에서 임의가입으로 바꾼 제도적 후퇴의 결과라는 점에서는 정부의 무관심이 야속하다. 제도적 개선책도 다듬어야 하겠지만 우선은 이들의 생활보호에 배전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눈물을 삼키며 귀국한 그들의 분노나 원한이 두렵다거나, 국가적 체면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사회의 최하위 노동력 수요를 메워 경제ㆍ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어엿한 사회구성원이다. '국적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사회적 처우에서 이들을 구별해서는 안 되는 게 논리적 귀결이다. 고통을 나누어 절반으로 더는 데 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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