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판사들에게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재촉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수 차례 보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있다. 이메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촛불재판의 처리방향을 언급한 정황까지 포함돼 있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5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신 대법관은 지난해 11월6일 촛불사건의 재판을 맡은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헌법재판소에 제청된 야간집회 금지 위헌심판 일정을 언급한 뒤,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게 미덕이기 때문에 구속 사건이든 불구속 사건이든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는 게 제 소박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메일 첫머리에는 ‘대내외비’ ‘친전’ 등 보안을 요구하는 표시도 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생각이)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신 대법관은 당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몇 차례 만나 위헌제청 사건 처리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신 대법관은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를 금지한 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직후인 10월14일에도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대법원장 업무보고에서 야간집회 위헌 제청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대법원장님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위헌 제청 사건 외) 다른 사건은 현행법에 따라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11월24일 또 한 차례 이메일을 보내 “헌재가 (위헌제청 사건을) 내년 2월 공개변론하기로 했다. …결정이 미뤄지게 되어 저 자신 실망을 많이 했다”며 “피고인이 위헌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처리와 관계없다면 통상적 방법으로 종국(마무리)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 내주기를 다시 한번 당부한다”고 요구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안팎에선 재판의 독립성을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라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사자인 법관들은 진상 규명과 함께 문책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사태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원행정처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이날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책임자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헌재측은 신 대법관이 헌재와도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위헌심판 사건에 대해) 내용을 알려주거나 의견을 교환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헌재 관계자는“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재판을 하라는 것은 관행에 반할 뿐 아니라 법관의 독립에도 반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과 이 헌재소장이 만났다는 법원 내부의 증언이 나오고 있어, 헌재도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신 대법관은 대법원 공보관을 통해 “이메일로 재판에 간섭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필요한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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